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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3) : 바람이 울고간114

고 향 고  향趙司翼 기억엔 있는데 자국이 없어서캔버스에 점하나 찍어 보면 차오르는 어떤 의미이걸 그리움이라고 하던가도화지 흰 여백으로흐릿한 기억 분분하게 오랜 추억을그저 흐득이며 바라보는 마음이 서글프다숲처럼 푸르게 물빛같던 청춘이 가고불러보는 연가(戀歌)가 서글플 때면양팔 가득 향수를 품어 안고불빛 흐린 골목에서 눈물만 펑펑했던 날처럼오늘이 그런 날인지 모르지만늦은 밤 시야가 어둔 뉴욕의 그늘에서나의 살던 고향은목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 된다 2018.11.10 -Brooklyn, New York  제목 2024. 8. 15.
떠도는 구름처럼 방황을 했다 떠도는 구름처럼 방황을 했다趙司翼숨어 지낸 세월이 너무 길었던 걸까침묵으로 봉인된 입술은 미소를 모르겠고뜸뜸이 전봇대가 서 있는철길 쓸쓸한 간이역으로 몰려드는 밤길 건너 철강 공장 사내들이 무너지면서곤한 몰골을 술집 평상 위에 펼쳐 놓고취한 밤을 모습들이 둘러앉아부어라 마셔라 술잔이 도리뱅뱅을 한다더러는 가고, 더러는 남고,둘러앉은 사람들 틈에서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 나는 방황을 했다먼 하늘에서 길섶 위에 내린 별처럼그런 아이들 모습이 생각나고또 아이들처럼 웃는 세상이 보고 싶다2020.10.29   이별노래(한상훈색소폰) 2024. 7. 3.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趙司翼 抒情도 아니면서 浪漫도 아니면서어쩌자고 살아온 세월 슬픈 흔적이안개 자욱한 벳푸의 저녁 들판을 말없이 간다풀 냄새 가득 십자가 외로운 성당에서전후 맥락도 없이 손 모으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그토록 단단했던 내가침묵은 많아지는데 말수는 줄어들고그 많던 사랑의 말도 훌훌 떨린 채나 스스로를 뭉개버린 고통이독살처럼 원주(原株)로 남아가슴을 움켜쥐고 숨이 막힐 때마다살면서 그래도 참아내던 인내가버럭버럭 불길처럼 솟아오르고노을빛 뉘엿뉘엿 해당화 핀 시골인데도못내 안타까운 눈물만 이러한 내가 된다 2021. 05.09  -  大分 別府(오이타  벳푸)에서  Sergei Trofanov-Djelem 2024. 6. 23.
고독에 대한 송가 고독에 대한 송가 趙司翼 서서히, 시나브로, 발끝까지 퍼지면서 아득히 먼 듯 한없는 어둠에서 나는 이윽고 고독한 나무가 된다 홀로 외로운데 빈 오케스트라가 울리는 스위스 바젤을 흐르는 라인강 무릎 부근에서 삶의 윤리를 고뇌하며 빗속 노을 같은 생의 한 자락을 계절처럼 내어 놓고 그렇게 머물다 간 프리드리히 니체, 칼 융, 칼 야스퍼스,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비롯 헤르만 헤세까지 시대를 살다 간 시인들 생애가 세월의 그림자를 마시며 또한 세월 따라 라인강을 흐르고 물 위를 아른아른 내 모습을 보면서 낯설고, 무색하고, 외로워서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스스로를 운다2017. Swiss Basel  제목 2024. 6. 14.
끝내 슬픈 여행이 된다 끝내 슬픈 여행이 된다 趙司翼울타리 너머 쌓인 세월을 바라보는 동안 굳게 닫힌 시선 허물어지면서 꿈인 듯 사실처럼 오랜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내 지쳐 울던 지난날은 어디쯤에 있을까 더부룩하게 늙어 가는 발자국을 뒤로하고 들장미 외롭게 핀 강변 따라 무심한 세월 홀로 중얼거리며 은둔(隱遁) 한 여행자는 끝내 눈물이 난다 빗방울에 시든 꽃이 고개를 들고 물결처럼 기폭을 흔든다 해도 언젠가는 창백한 공허 속에  메아리만 남기고 영혼의 행렬 따라 슬픈 여행자가 된다 비록 내가 하나님처럼 오래 살도록 선고를 받았다고 할지라도2018, 9, 12 - Trafalgar St. James London   제목 2024. 6. 3.
세상을 앞서 간다 해도 세상을 앞서 간다 해도趙司翼푸른 밤을 창백하게 별빛 흐르는데오늘도 누군가와 이별 하면서 슬픈 세상이 죽음의 찬가를 부르며 어둠으로 간다 언젠가는 이 세상과 이별하는 내가 내쫓기듯 견딜 수 없는 슬픔일 까가 못내 두렵다 피눈물이 구름처럼 그늘진 계곡에서  내 모습을 껴안고 눈물짓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세상과 이별을 하고 요단강을 건너 도솔천으로 미련 남기지 말고, 말씀인 즉 은,  분별 가득 정의로웠기에엄마가 첫 아이를 낳고 환희처럼   나도 그랬다고, 하며 먼저 간다 해도,  맙소사! 오 마이 갓! 천국이 이웃 사람들처럼 왔다가 간다(2006, 10, 18 - 병상에서)  제목 2024. 5. 27.
항구의 슬픈 밤 항구의 슬픈 밤 趙司翼뱃일처럼 고단한 밤 파도소리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가 화산처럼 솟구칠 때마다 해거름 보았던 어부의 무사귀환을 빌며 몸을 다해 기도를 껴안았으나 내가 지닌 힘으로는 윤곽뿐 모순에 불과했는지짠내 나는 밤 넋을 놓고 그저 허무하게 어촌마을 사람들 텅 빈 시선 속에 동해가 희미하게 흔들리는 새벽을등 푸른 파도가 울부짖고 또 한 가족 슬픔을 가슴 깊이 낙인찍은 밤이었다 죽변항 어둠을 털고 아침 오면서 눈시울을 묻어 두고 그래도 그 바다로 출항 채비가 뱃전에 쌓일 때까지 여기 모두는 몸에 지닌 슬픔을 말하지 않았다2018 - 울진 죽변항에서  제목 2024. 2. 20.
아버지 세월 아버지 세월 趙司翼야심한 밤 무슨 일로 절규하듯 설움 모르겠고뜬눈으로 마디마디 뼈아픔도 설원인데 응결된 지평, 날 밝으면서 목련 꽃눈이 나비처럼, 그럴 때쯤 오래전 아버지를 눈물 속에 여의었지 눈보라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주말이면 아버지의 술 취한 저녁이 오고 자식들 심장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 가난으로 아픈 그 시절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자식 사랑, 아버지는 그러하셨다지고 또 지고 세월 흘러도 그래도 남은 슬픔 다 하지 못한 날 당신의 뜨거운 숨결 구름처럼 이는데 추억은 갈수록 쓸쓸하고 아직도 엉킨 눈물 가슴속을 짜낼 수 없는 그리움이 깊게 깊게 맺힌다 1990.01.18 제목 2024. 2. 9.
삶과 인생 삶과 인생 趙司翼 그 향기롭던 인생 향연(饗宴)도 해저문 노을로 시름시름 구름처럼 일더니 병통 잦아지면서 익숙한 길 오듯 오는 죽음 남 얘기라며, 멀리멀리 먼 미래에 던져 놔도 알게 모르게 명(命) 줄 다하면서 가는 것이 인생이다 삶은 죽음에서 근원하여 생을 싹 틔우고 사계절을 여행하다가 지지대가 꺾이는 날 왔던 곳 되돌아가는 한 잎 남김없이 한 철 피었다 지는 꽃에 불과하다 죽음은 숙명이고 불변의 진리인 것을 삶이 내일 끝난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다 잠시 세 들어 살던 곳 비워주는 것인데 2005.10.18 보문사에서 제목 2024. 1. 9.
슬픈 판타지아 슬픈 판타지아 趙司翼 자정이 넘도록 문간방 덧문 밖을 휘몰아치더니어머니 손길 끊일 날 없던 장독대를 감싸 안고 눈이 내렸다뒷 뜰 가득 녹색 지대 대나무 울타리가장막 속에 유령처럼 고개를 숙이고또 다른 나무들이 하얀 등대처럼 우뚝 솟은 모습을 보면서불과 몇 살로 기억되는 어릴 때가지금은 가고 없는 누이와 화롯가에서세상 유일한 할머니 옛이야기를 먹고 자란그 시절이 눈 내리는 강둑에서 헤엄치듯 불쑥 불쑥 오른다마치 오래된 겨울이 다시 온 것일까흐릿하게 미소 띤 할머니가 상상 속에 고요한데환희의 눈부신 외침 한번 없이구름 속을 번개처럼 날아다니며 살아 온 세월인간 본성이 느끼는 고독 우울하게추억이 소멸되면 그때는 탓할 운명도 없겠지요람에서 무덤으로 함박눈이 쏟아진다2001년 1월 18일 제목 2023. 12. 22.
홀로 외로운 섬 홀로 외로운 섬 趙司翼 동경에서 겨울밤, 열차가 지나가는 동안 내내 눈물이 난다 날리는 눈처럼 시골집 어린 날은 기억 희미한데 문짝 흔들면서 사랑방 창틀이 삐걱거리고 못내 그립고 보고 싶은 할아버지 미소가 생전처럼 가물거린다 명주실 꾸러미 같던 수염을 댕기머리 땋던 유년 때 할아버지 무릎도 타버린 유성처럼 어디론가 뿔뿔이 날리는 눈처럼, 그래도 들춰낼 얘기가 남아 있어서일까 울새가 날아가는 북쪽 하늘 노을 검어지면서 푸른 밤 둥지 트는 별들의 합창 따라 그리움을 울어야 하는 나는 홀로 외롭게 떠다니는 섬이 되고 눈 내리는 철길 멀리 할아버지 걸음이 터벅터벅 오신다 1999.12.24 제목 2023. 12. 20.
이별처럼 슬픈 가을 이별처럼 슬픈 가을趙司翼 갈 빛 냄새가 바람에 날리는 거기 어디쯤서 있거나 걸어가거나 흐릿하게 혼자 있는 나무에서바람 새가 붉게 타오르는 황혼으로 비상 하고무너져 내릴 듯 그 화려한 색깔나는 낯선 사람처럼 혼자 그렇게 너를 바라만 보면서오 이런 날에는 화가가 되고 싶다이제야 알 것 같다열두 달의 끝자락이 가을이라 외로운 것을,시간은 일광보다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나뭇가지 사이 찬바람이 울고온화하게 따뜻했던 포옹이 차게 변하는우리가 곧 보게 될 하얀 땅겨울 흰 날개가 보일 때쯤 가을은 이별이 되고불타는 태양 식어가면서 애무의 별이 된다 슬피 우는 눈물을 꺼트린 채수십 장 일기를 써야만 하는 계절이다 제목 2023.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