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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1) : 열도에 내리는35

娼女村 悲歌 娼女村 悲歌趙司翼훗날 좌절하고 절망하는 무엇이든 지금은 별빛 흐릿한 뒷골목에 수은등이 내 걸리고 야화들 고단한 銀座의 밤어디선가 굶주린 욕망들이 한밤중을 미친 몸짓들로 열기를 더하며 타들어 간다 국적 없는 시간들이 들불처럼 달궈진 몸을 헹구며 유령처럼 꽃을 태운다 이 시간만큼은 눈물의 이유를 묻지 않고 지친 몸엔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불빛 아래 빛바랜 세월을 뒤집어쓰고시든 꽃들만 켜켜이슬픔에 젖은 인생을 보면서도 이 거리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문밖을 서성이는 야화들아 잘 있거라긴자(銀座)의 짧았던 밤들아2004.10.17  제목 2024. 5. 4.
아직도 시모노세키는 울어야 한다 아직도 시모노세키는 울어야 한다 趙司翼눈 감으면 그뿐 이라고, 생각하기엔  성난 바다 겨울 폭풍처럼 지옥 같은 아침이었고 늑약(勒約)의 조선인에겐 하루가 한 세월처럼 길었을 것이다 징용으로 낱낱이 절단된 자유는 탄광에서 핏물 가득 바람처럼 흘렀을 것이고 바다 밑 갱도에 이르기까지 곱새등 히로히토 천황 만세를 부르짖는 박수소리 울릴 때마다 막장 더욱 깊숙이 허리를 굽히고 휘~휘~ 땅 위에서 숨 한번 내 쉬지 못하고 1942년 10월 17일, 죽어서야 자유의 몸이 된 거제가 고향이라 쓰인 박 씨의 비석 곁엔 그 세월이 깊게 배인 흔적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머리털이 곤두서는데 역사 일그러진 시모노세키에서 대한민국 여권을 소지한 썩어 문드러져 흥청망청 모습들이 가슴 아프다 살인자, 약탈자로 내 나라.. 2024. 3. 13.
후쿠오카 戀情 후쿠오카 戀情趙司翼불빛 장미꽃처럼 타오르는 항구의 밤 달 뜨면서 혈관 속을 오래된 기억들이 꿈틀대는 나 홀로 외롭게 쓸쓸한 밤이어도 매화가 피고 벚꽃 피는 봄날이어서 광기 웅성거리는 항구의 불빛만 울어 주면 된다 휘영청 달 푸른 밤을 젖은 눈동자가 그렁거리고 고깃배 정박(碇泊)한 나루터에서 뱃고동 소리 슬피 우는 밤 임화, 정지용, 윤동주, 오랩도록 있어줄 것만 같던 그들 이야기도 이제는 잔 편(殘片)의 기억 뿐으로꽃잎처럼 별 되어 쏟아지는 밤 갑자기 눈물이 흐르고 항구의 불빛들은후쿠오카 새벽 밤을 젖어 흐르는데2022.03.29 - 福岡에서   제목 2024. 3. 4.
니혼바시 증권거래소 니혼바시 증권거래소 趙司翼모스 부호처럼 전광판이 깜빡이고잿더미를 우글우글 탄식들이 장마당에 쏟아진다 그것은 게으름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니다 덫에 걸린 사람들 자세이고 모습이다 강이 바다를 만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어 영원한 것처럼여기는 그런 것도 아니고,구체(具體)가 없는 인생 여정을도미노처럼 전광판이 요동칠 때마다 허무하게 좌절 속을 모습들이뒷골목 주막에 취해 객담을 털어내는 동안에도 곡예를 하듯 이들 주변으로 위태하게 외줄 꾸러미가 쌓여만 간다 별빛 곱게 우주 이야기가 긴자(銀座)의 빌딩 숲을 넘치는 밤실패한 어깨들끼리 시간을 태우며2019. 02. 24 - 日本証券取引所  제목 2024. 2. 5.
가을밤을 동경에서 가을밤을 동경에서 趙司翼 초대한다기에 기다렸는데 편지는 오지 않았다 눈 뜬 밤을 늙은 나무는 잎을 털어 내고 밤 새도록 빈 하늘만 이렇게 쓸쓸할 때면 굴뚝 연기 모락모락 시골집이 생각나고 죽는 날까지 거저 주어진 것은 없다 가을도 그렇다 선택도 아니고 피할 수도 없고 좋아도 싫어도 우리는 한 세월을 가을 속에 던져주어야 한다 내 남은 여생은 작아만 가고 어루만지면서 눈시울이 이다지도 서러울까 통영 친구 회갑연은 자녀들과 행복했는지 ! 기다렸는데 소식은 없고 먼 하늘 별만 있다 이 계절엔 누구나 한 번쯤 얼굴을 숙이고 소쩍새 우는 밤 그렇게 눈물 고개를 넘는다 이래도 저래도 가는 게 세월이고 인생인데 세상 사람들아 내 친구들아 이것저것 무엇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시를 쓰면서 편지를 쓰면서 그리움을 속.. 2023. 10. 14.
비와 천둥 비와 천둥 趙司翼 한여름을 작은 농장과 돌배나무 듬성한 그곳엔 농부의 원성 자자한 한숨이 비처럼 내리고 천둥 치는 아우성 속에 낙과 소리가 심장 떨어진 거라 했다 예리하게 적막했던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 빨간 라즈베리를 맛볼 때 또다시 침묵의 순간을 천둥이 투덜거린다 창밖 멀리 거울에 비친 반사처럼 빗속을 몇몇 농장이 일그러지고 알몸으로 젖어 우는 아침 오존층, 금이 간 덮개 밖에서 불협화음이 또다시 청회색 흐린 일출을 울부짖기 시작한다 빗속을 가지에서 7월의 매미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웅크리고 흠뻑 젖은 몸을 사려봐도 뭐든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비 그치고 천둥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2023.06.16 - 富士山村 山梨県 鳴沢村에서 제목 제목 2023. 7. 8.
후지산. 富士山 후지산. 富士山 趙司翼 백 년 세월 주저앉은 삼나무가 마법처럼 틔운 가지 빗살 잎이 푸르게 차오르는 이 모두를 담아가기에는 내 가슴이 너무 작고 무릎까지 흠뻑 젖은 내 지친 일상을 침묵으로 잠재우는 후지산의 활기찬 위엄 춤추는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철새가 노을 저편으로 날아가는 동안 아직 작별을 고하지 않은 태양 구름 뒤에 숨어 꿈같은 그림자를 노래 부른다 저물어 가는 산허리 갈비뼈 윤곽이 황혼 속으로 미끄러지는 순간 나뭇가지 사이를 밀고 당기는 그림자 바위 벽이 한밤중처럼 부드럽다 제목 2023. 6. 17.
슬픈 마음 되어 봐도 슬픈 마음 되어 봐도 趙司翼 또 하루가 낡은 청바지 주위를 주춤거리다가 지칠 줄 모르는 거리의 잡음 피해 가듯 오후 7시 방향, 황혼결에 몸을 묶고 호기(胡騎)에 찬 항구 멀리 사라지는 '후쿠오카 장자다케 미나미' 형무소길 낯선 밤을 별 먼 하늘이 오르락내리락 파편처럼 그늘에 가려 고향 집 하늘에 뜬 달의 손짓에도 응답하지 못했다 내가 떠도는 형무소 길 어딘가 광복을 목전에서 별이 된 슬픈 영혼 그 원통을 단 한 번도 고려하지 못했다 동주, 그가 떠나던 이월 열엿새, 밤 깊은 항구에서 눈동자를 가르고 내 눈물은 어디로 가느냐 후쿠오카 형무소 담을 기대고 가끔씩 손을 모아도 통찰 없는 침묵은 무의식 속 짓거리 행위일 뿐으로 2015.02.16 - 후쿠오카에서 동주는 죽는 순간에도 정의로운 이름 대신 강압에.. 2023. 6. 8.
항구의 부르스 항구의 부르스 趙司翼 고깃배 지친 얼굴로 드나드는 남쪽 항구 나가사키 그 바다에는 기억에만 존재하는 친구가 있다 우리 이별하던 그날처럼 열도의 하늘 아래 인적 끊긴 바다는 파도를 뒤적이고 죽도록 미워했던 텅 빈 바다엔 아직도 우리 우정이 물결 지는데 친구가 두고 간 세월 빈 여백 안으로 못내 슬픈 울음이 되어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추억 야위어가는 선착장 술집에서 '항구의 블루스' 슬픈 노래가 헤일 수 없는 그리움을 논물로 쏟는 밤 비 내리는 항구를 뒤로 하고 돌아서는 길 등대뿐인 어둠이 못견디게 슬퍼서 걸음을 멈추고 끝내 울음이 된다 BGM - 西田佐知子 (港町ブルース) 西田佐知子 (港町ブルース) 2023. 5. 3.
재일교포 재일교포 趙司翼 오늘도 열린 문틈으로 담배연기가 타 오른다 밤마다 창밖 어두운 심연을 담배로 태우며 유혈의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공허한 외침에 불과한 피맺힌 절규를 밤마다, 그래서 누가 들어도 도시 까마귀 슬픔 같은 통곡을 목놓아 운다 조선의 광부로 끌려 와서 핍박 속에 살아온 세월 절망을 낭만으로 살다 간 아버지가 못내 그리울 때면 부풀어 오른 견딜 수 없는 증오 때문이라 했다 봄이면 길 건너 이웃집 마당에 붉게 핀 튤립 화단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그곳엔 구십 년, 아버지 인생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습관적으로 그곳을 향해 숙이는 고개 꽃밭 멀리 떨어진 어두운 구석에서 그는 밤늦게까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편집 등록 . 정민재 제목 2023. 5. 1.
그 여자의 술집에서 그 여자의 술집에서 趙司翼 일몰의 빛을 삼키며 저물어 가는 포구는 오늘 어떤 이들이 세월을 노래하고 갔을까 별가루처럼 물빛 일렁이는 이 항구도 우연히, 또는 자연스럽게 세월의 그림자로 바다와는 영원한 이별이 될지도 모른다 사라지고, 다시 모이고, 사연 분분한 항구의 푸른 바다를 곁에 두고 웃다가 세월을 놓쳐버렸다고, 울다가 청춘 늙어버렸다고, 하바롭스크에서 법학을 전공했다는 술집 여자의 탄식 어린 눈물 앞에 내 존재도 이별의 아픈 추억이 있어 항구는 이별뿐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어찌 내가 너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었다 편집 등록 . 정민재 제목 2023. 4. 16.
列島에 내리는 비 (四) 列島에 내리는 비 (四) 趙司翼 거기엔 제국주의 불순한 욕망이 꿈틀 대고 나의 밤은 가로등이 눈감을 때까지 치밀어 오른 분노를 술로 태우며 놈들, 씨의 종말 후 긴자의 또 다른 밤을 생각한다 욱일기 빗발치듯 들끓는 긴자의 밤 변이 된 영혼이 휩쓸고 간 곳엔 까마귀 떼 울음소리가 악보처럼 펼쳐지고 광장을 소리 없이 비는 내리는데 고베로 가는 신칸센 교각 아래 집 없는 자들의 가난한 하루가 빗속을 떨고 있다 비 내리는 밤을 홀로인 몇몇 사람들처럼 나도 말 걸 사람 없어 기꺼이 주변 외로움과 친구가 되어봐도 제국(帝國)의 사상(思想)과 현실이 공존하는 열도의 거센 물결 속 외로움 뿐이다 편집 등록 . 성우혁 제목 2023.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