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번역시54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Jealousy is my strength by Ki Hyeong-do After a long time has passed, weakened, the book.. 2024. 12. 19. 이시영 . 서시 이시영 . 서시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Prologue by Lee Si-young Come quickly, the face I miss, the one who left to set foot over the mountain, across the water. Even when the bamboo leaves rustle, the faces await you– they burn their sad eyes, opening the paper screen. Before this night ends, come, shaking the gro.. 2024. 12. 16. 최돈선 . 겨울나무 그림자 최돈선 . 겨울나무 그림자 거기, 누가 아직도 남아있을 것만 같다 바람이 햇빛을 몰고 간 자리 햇빛의 상처만 거뭇거뭇 그을어 남은 자리 아직도 이야기할 무엇이 있기에 기다림에 지친, 목이 긴 사람들의 얼굴이 돌아앉아 조용조용 웅얼거리고 있을 것만 같다 타버린 실핏줄처럼 땅 위에 누운 채 왠지 거기 오래도록 잊혀진 나뭇잎의 그리움들이 흔들리고 있을 것만 같다 The Winter Tree’s Shadow by Choi Don-sun There, someone still appears to stay. The site where the wind has driven away the sun, the site where only the blackishly tanned scars of the sun remain,.. 2024. 9. 9.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가문 어느 집에 선들 좋아하지 않으랴.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아아, 아직 처녀인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그러나 지금 우리는불로 만나려 한다.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저 불 지난 뒤에흐르는 물로 만나자.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올 때는 인적 그친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If We Could Meet in Water by Kang Eun kyo If we could become water and meet Wouldn’t any family of d.. 2024. 8. 27. 곽재구 . 은행나무 곽재구 . 은행나무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대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2024. 8. 23. 윤동주 . 참회록(懺悔錄) 윤동주 . 참회록(懺悔錄)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속에 내 얼굴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줄에 주리자 - 만(滿) 이십사(二十四) 년(年) 일(一) 개월(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웨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Yun Dong-ju . Confession The fact that my face still remains .. 2024. 8. 14. 2024.08.14 - 정지용 . 고향 정지용 . 고향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Homeplace by Jeong Ji-yong Here I am back at my homeplace But it is not the home I've longed for Wild pheasants nurse their eggs Cuckoos calling as they do in season Only my heart isn't embracing i.. 2024. 8. 12. 남정국 . 답장을 기다리며 성명 . 남정국출생 . 1958년 12월 21일사망 . 1978년 11월 4일학력 . 고려대학교 1년 중 사망남정국은 19세이던 1978년 11월 4일경기도 대성리 북한강에서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시신을 수습하였는데만 20년의 삶을 채우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답장을 기다리며몸처럼 마음도 지칠 때 나는 밤을 느낍니다 밤의 밥상을 받습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내 목소리를 보았는지 내 마음을 들었는지 혹은 우물물처럼 일렁이는 내 그리움을 간파했는지 오늘도 비는 혼자 내렸습니다 내일은 태양이 또 제 홀로 빛나겠죠 짜장은 눈물도 조금은 나는 멜로물 중에 나는 휘날리는 청춘이 부럽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둘러써 보고 싶고 며칠씩 굶어 쓰러지고도 싶습니다 제목 2024. 7. 23. 김남주 . 망월동에 와서 김남주 . 金南柱 출생 : 1946년 10월 16일, 전남 해남군 사망 : 1994년 2월 13일 (향년 47세) 광주제일고등학교 (중퇴) 대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 (합격)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 영어영문학 / 제적) 데뷔 : 1974년 문예지 '창작과 비평' 등단 1972년 유신독재, 1973년에 반공법으로 3년을 선고받았으며 이 사건으로 전남대학교에서 제적 당했다 1980년 '남민전 사건'으로 징역 15년 선고(9년 복역 후 가석방) 옥중에서 얻게 된 지병으로 47살에 사망하였다 망월동에 와서 . 김남주 파괴된 대지의 별 오월의 사자들이여 능지처참으로 당신들은 누워 있습니다. 얼굴도 없이 이름도 없이 누명 쓴 폭도로 흙속에 바람 속에 묻혀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자유를 위하여 사람 사는 세상의 .. 2024. 5. 16. 정호승 . 미안하다 미안하다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I'm sorry by Hoseung Jeong There was a mountain at the end of the road There was a road at the end of the mountain There was a mountain at the end of the road again. You were at the end of the mountain I was crying with my face buried between my knees and knees. I'm sorry.. 2024. 5. 9. 신좌섭 . 네 이름을 지운다 신좌섭 . 네 이름을 지운다 몇 번을 망설이다민원실 들어서 신고서를 쓴다 볼펜이 니오지 않는다 오래 끌어온 탓에 벌금 삼만 원 얼굴이 하얀 창구아가씨가 나를 들여다본다 돌아올 수 있다면 돈이 얼마라도 버티겠건만 십구 년 전 너 태어날 때 이름 석자 눌러쓰던 이 손으로 네 이름을 지운다 용서해 다오 휘청거리며 돌아오는 길 멀리서 아득히 랩노래가 달려온다 이름마저 지워진 네가 외롭게 랩을 부르는구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좌섭 교수가 2024년 3월 30일 저녁 6시쯤 65세로 사망했다 신 교수는 , , 등의 시로 우리 현대문학의 큰 획을 그은 신동엽 시인의 아들이다. 하지만 신 교수가 늦은 나이에 시 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아니었다. 지난 2014년 아들이 원인 모를 심정지로 .. 2024. 5. 2.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Natasha, the White Donkey, and Me by Baek Seok Tonight the .. 2024. 4. 13.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