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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번역시47

문태준 . 눈 내리는 밤 문태준 . 눈 내리는 밤 말간 눈을 한 애인이여, 동공에 살던 은빛 비늘이여 오늘은 눈이 내린다 목에 하얀 수건을 둘러놓고 얼굴을 씻겨주던 가난한 애인이여, 외로운 천체에 성스러운 고요가 내린다 나는 눈을 감는다 손길이 나의 얼굴을 다 씻겨주는 시간을 The Snowy Night by Moon Tae-jun who had pure eyes my lover oh, the silver scales that occupied your eyes. Tonight snow falls. Oh, my poor lover who wrapped my neck with a white towel and washed my face, a sacred quiet descends upon the lonely planet. I clos.. 2024. 1. 25.
곽재구 . 그리운 남쪽 곽재구 . 그리운 남쪽 그곳은 어디인가 바라보면 산모퉁이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우리가 매듭 굵은 손을 모아 여어이 여어이 부르면 여어이 여어이 눈물 섞인 구름으로 피맺힌 울음들이 되살아나는 그곳은 돌아보면 날 저물어 어둠이 깊어 홀로 누워 슬픔이 되는 그리운 땅에 오늘은 누가 정 깊은 저 뜨거운 목마름을 던지는지 아느냐 젊은 시인이여 눈뜨고 훤히 보이는 백일의 이 땅의 어디에도 가을바람 불면 가을바람 소리로 봄바람 일면 푸른 봄바람 소리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The South I Long for by Kwak Je-gu Where is the place? If you.. 2024. 1. 19.
윤동주 . 내일은 없다 윤동주 . 내일은 없다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무리여! 동무여! There is no Tomorrow by Yun Dong-ju They repeatedly say, "Tomorrow, tomorrow." I ask them, "When does it come?" And they reply, "When it dawns, tomorrow comes." I search for the new day myself. When I awake and look around I find no tomorrow. Rather I find the today that has already come. My folks! Ther.. 2023. 12. 25.
정지용 호수 정지용 by 호수 얼골 하나 야 손바닥 둘 로 푹 가리지 만, 보고 싶은 마음 湖水 만 하니 눈 감을 밖에. Lake by Jung Ji yong A face I can surely block with my two palms, but my heart of longing, big like a lake, and I cannot help but close my eyes. 제목 2023. 12. 18.
정호승 . 가난한 사람에게 정호승 . 가난한 사람에게내 오늘도 그대를 위해 창 밖에 등불 하나 내어 걸었습니다 내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마음 하나 창 밖에 걸어두었습니다 밤이 오고 바람이 불고 드디어 눈이 내릴 때까지 내 그대를 기다리다 못해 가난한 마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눈 내린 들길을 홀로 걷다가 문득 별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To the Poor Person by Chung Ho-seung Today again, for you I hung a lamp outside the window. Today again, I couldn’t wait for you any longer, and I hung a heart outside the window. Night has come, wind blows, and at las.. 2023. 10. 31.
윤동주 . 편지 윤동주 .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Letter by Yun Dong-ju As I write I miss you, no, I better not say. Just put it down as a long time passed. Instead of saying I really can't get over her With the long, long stories I sewed in a line, Just write her t.. 2023. 10. 22.
신달자 . 낙서 신달자 . 낙서 고향 집 낡은 벽 어지러운 글씨 본 적 없는 어설픈 기차 그림 어디에도 내려놓을 곳 없었던 내 마음의 외딴 방 앉은뱅이 글씨는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흐릿하게 지워진 기차는 제대로 한번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느려 마음 먼저 일어나 서둘러 서울 와 버린 낙서의 찢긴 날개들 내 심장에서 가끔 퍼덕거린다 맥박 소리보다 더 빠른 퍼덕거림 밑에 상상의 볍씨 하나 오롯하게 터진다 푸른 정신, 예술의 진원지가 거기였다 Doodling by Shin Dal-ja A poor drawing of a train and dizzy writings occupy an old wall of my parents’ home– a solitary room of my heart that couldn’t be kept d.. 2023. 10. 17.
오세영 . 나를 지우고 오세영 . 나를 지우고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Erasing Myself by Oh Sae-young On the mountain, to live along with the mountain is to become the mountain If a tree erases itself, it becomes a forest; if a forest erases.. 2023. 10. 10.
박노해 . 가을볕 박노해 . 가을볕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 푸른 하늘에 내걸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어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내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Autumn sunlight by Park Nohae) I love the autumn sun The harvested peppers are dried in the sun. The red peppers spread out in the dirt yard It evaporates water and illuminates the transparent inside The laundry hung in the high blue sky It .. 2023. 9. 16.
송수권 . 시골길 또는 술통 송수권 . 시골길 또는 술통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The Wine Barrel and the Country Road (Song Su-kwon) The wine barrel jostles on the bike carrier. The grass smell turns the spokes. The spokes make the wine splash. The gravel jumps up over the barrel and falls on the gr.. 2023. 9. 10.
한용운 . 이별은 美의 創造 한용운 . 이별은 美의 創造 이별은 美의 創造입니다. 이별의 美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黃金과 밤의 올[絲]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없는 永遠의 生命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임이여,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美는 이별의 創造입니다. Parting Creates Beauty by Han Yong un Parting creates beauty. There is no beauty of parting in the ephemeral gold of the morning; nor in the seamless black silk of the night; nor in the eternal life which admits no death.. 2023. 8. 14.
이성부 . 달뜨기재 이성부 . 달뜨기재 지리산에 뜨는 달은 풀과 나무가 길을 비추는 것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 지워지지 않는 눈물자국을 비춘다 초가을 별들도 더욱 가까이 하늘이 온통 시퍼런 거울이다 이 달빛이 묻은 마음들은 한줄로 띄엄띄엄 산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귀신들도 오늘은 떠돌며 소리치는 것을 멈추어 그림자 사이로 고개 숙이며 간다 고요함 속에서 나를 보고도 말 걸지 않는 고개에 솟는 달 잠깐 쳐다보았을 뿐 풀섶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밝음과 그림자가 함께 흔들릴 때마다 잃어버린 사랑이나 슬픔 노여움 따위가 새로 밀려오는 소리를 듣는다 ◆ The Moonrise Hill by Lee Sung bu The moon that rises over Jiri Mountain doesn’t illuminate grass a.. 2023.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