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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3) : 바람이 울고간113

이별처럼 슬픈 가을 이별처럼 슬픈 가을趙司翼 갈 빛 냄새가 바람에 날리는 거기 어디쯤서 있거나 걸어가거나 흐릿하게 혼자 있는 나무에서바람 새가 붉게 타오르는 황혼으로 비상 하고무너져 내릴 듯 그 화려한 색깔나는 낯선 사람처럼 혼자 그렇게 너를 바라만 보면서오 이런 날에는 화가가 되고 싶다이제야 알 것 같다열두 달의 끝자락이 가을이라 외로운 것을,시간은 일광보다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하면서 나뭇가지 사이 찬바람이 울고온화하게 따뜻했던 포옹이 차게 변하는우리가 곧 보게 될 하얀 땅겨울 흰 날개가 보일 때쯤 가을은 이별이 되고불타는 태양 식어가면서 애무의 별이 된다 슬피 우는 눈물을 꺼트린 채수십 장 일기를 써야만 하는 계절이다 제목 2023. 10. 30.
우울한 노래 우울한 노래趙司翼그토록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몸보다 빠른 세월 사느라 흐릿한 정신에 육신만 무거워지고침침한 방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책상 머리맡에 촛불을 켜 놓고밤이 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편지를 쓴다처진 어깨로 슬픈 사람이 되어그립고도 슬펐던 오랜 이야기를 보면서홀로 쓸쓸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마음 아프다이 무겁고 바람 잘날 없는데저 산은 무슨 인내를 배웠기에 조용한 침묵일까짚신처럼 낡은 우울을 피할 수가 없고바람이 얼굴을 작은 스침에도말라비틀어진 윤곽선을 눈물이 흐른다풀꽃행렬 바람에 흔들리고솔밭길 공허로 발자국이 남아도그냥 얼굴을 파묻은 채 푸른 숲에 있고 싶다 제목 2023. 10. 28.
이별 후에 이별 후에 趙司翼청량리발 완행열차로 가다 보면 태백산 자락 오래된 탄광 가난한 마을이 있다 빈 공간처럼 잊힌 길을 기억해 내며 걸었다 기척 없는 유리창엔 거미줄만 나부끼고 애수(哀愁)를 밥 먹듯 하던 차라리 슬퍼서 아름다웠던 여자의 추억 텅 빈 찻집에는 목각 인형뿐눈시울만 쓸쓸하고 억새풀 흔들리는데 그래도 남은 미련이 얼굴을 맞대고 둘러앉아 훌쩍이고 불러보려던 여자 이름도 잊은 채녹슨 주황색 출입문 밖을 기대 서서 다 지지 못한 그리웠던 순간들추억도 그리움 모두 잊힌 이름이 되자2015.09.20 - 사북에서  제목 2023. 10. 6.
가을날의 초상 가을날의 초상趙司翼햇살처럼 버들가지 나부끼는 개울 따라나뭇잎 붉은 가을이 억새 우거진 두렁길로 왔다이를 증언하듯 달과 별이 머물다 간 문밖에는하늘 한구석이 갈색 깃발 펄럭이며 높이를 밀어 올리고이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일수록심각성을 꿈에서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아무 때나 외로운 것들이 불꽃처럼 터지는데어쩔 것이냐! 이 한없는 그리움을,몸부림을 해서라도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어야 한다내 쓸쓸하고 외로운 생각이 헤맨 밤어둠에 묻힌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르고이슬에 젖은 가을밤은 쓸쓸한 그리움이 된다달 뜬 밤 무엇이건 원고지에 쓰다 말고골목을 기웃기웃 인사동에서무명 시인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처럼온통 모든 것들이 가을날 초상이 된다   제목 2023. 10. 3.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趙司翼 시(詩), 그 서정처럼 들꽃 향기 익어 가고스치듯 들머리를 지저귀는 바람소리오늘 밤도 세레나를 연주하는 성화의 선물에도문득 돌아보면 나 홀로 쓸쓸했고거뭇거뭇 얼굴에 잡티가 나부끼는 낙엽처럼 슬픈 것은오래 산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인내와 침묵을 미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슬픈 사슴처럼 영혼의 울부짖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길가에 널린 흙냄새만큼 슬픔 수북하게씹어 뱉은 연기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아직도 생애가 살아 흐르는니체, 릴케, 괴테, 모네, 고흐,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그들 이야기가 영혼 되어 내게로 온 것이다병 지닌 가슴에도 별 같은 희망이 피어그러므로 요란한 돌풍에도 지치지 말 일이다  제목 2023. 9. 30.
가을비 쓸쓸한 밤 가을비 쓸쓸한 밤 趙司翼탱자나무 울타리를 퍼득이는 열매에게도 살아가는 이야기 있듯 들국화와 코스모스, 여러 들꽃들도 삶의 무게는 있어 부러질 듯 목덜미를 쥐어 잡고 찬 비 내리는 밤 그 냉기와 가속을 받아 내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이별 이야기가 가을로 든 길목에서 저마다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장독대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감나무 붉은 잎에도 생기는 남아 있어 그 짜릿한 중독성처럼 마루판에 낡은 캔버스를 펼쳐 놓고 인적 끊긴 밤 홀로 외로이잎새들 이별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제목 2023. 9. 28.
친구의 바다 친구의 바다趙司翼친구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우리 이별했던 시간 흘러 그 여름이 다시 오고기억을 우산처럼 펼쳐봐도저 바다만 깊은 밤을 소리 없이 울고 있다항구에서 우두커니 캄캄한 밤이별했던 시간을 지우면서예전처럼 둘이 함께 별을 봤으면 좋겠다송전탑 깜박이는 해안선 멀리무인도는 너도 슬픈 등대 그림자가빈 골목 가로등처럼 쓸쓸한데고기 잡는 어부 모습이 되어 이따금씩텅 빈 바다에 모싯돌만 덤벙덤벙홀로 외로이 친구 이름 불라 봐도나가사키는 친구 바다가 있는 곳이다2016.10.18 -나가사키 항구에서편집등록. 성우혁 제목 2023. 9. 19.
시골 간이역에서 시골 간이역에서趙司翼계절마다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적 영감에도 해가 갈수록 붓질 흐려만 지는 모순의 목덜미를 쥐어 잡고 거대 도시를 피해 오듯 피해 오면서 가로수 설레게 익어가는 남원행 시골 간이역 그 오랜 기억 거세게 밀려들면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촉촉한 눈가에 술래잡기 하던캔버스 주위를 산책하는 어릴 때 친구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그 천진하던 얼굴을 그려야겠다 박 냄새 익어 가는 초가주막 쉼터에서 간직했던 시를 술상 곁에 펼쳐 놓고 가을달 둥근 밤 별을 기다리는 동안 아득히 노을 먼 하늘이 물결처럼 곱다 계절은, 가을은, 갔다가 되돌아온데나 홀로 쓸쓸한 새벽돌아올 수 없는 징검다리 길 별 보며 간다  제목 2023. 9. 15.
흑산도 슬픈 연가 흑산도 슬픈 연가趙司翼바다 품을 파고드는 쉴 새 없는 노을 멀리파도 떼가 갈팡질팡 눈덩이처럼 밀려들고깊은 어둠 물결 휘몰아치는데등불 몇 개 뱃머리에 걸고 새벽까지홍어 잡는 어부는 텅 빈 시간을 그물에 싣고어둔 바다만 훌쩍훌쩍 파먹고 돌아오기 일쑤라 했다이런 밤 흔히 말하는 번뇌도 아니고그렇다고 혼자라는 외로움도 아니다홀로 쓸쓸해도 울컥하지만 않으면 된다흑산도 앞바다 파도 출렁이는데머리맡에 새벽 별을 풀어놓고바다와 한 몸 되어 있는 동안섬사람들 서러운 인생 이야기가깊은 밤 소리 없이 서성거리고 있다2016.08 - 흑산도에서 제목 2023. 9. 14.
운명을 듣는다 운명을 듣는다趙司翼문과 문사이 유리창을 기대 있다 보면 느릿느릿 바람 나부끼고 보이지 않는 빛들의 눈부신 경험 나의 우월이라 말했던 이젤에 놓인 캔버스 오늘 이야기도 저항뿐 인 흔적으로 찬란했던 푸른빛도 비참하게 영혼 없는 문장들만 곤경에 처해 있고 이제 와서 나 더러 어쩌라고, 이 모두 차마 어쩌라고, 지금에 와서 그것은 짚신짝처럼 외면했던 운명이었다 세월에 패인 발자국이 너무 깊어 앞날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불길함 또다시 매몰될까 두렵고 사실, 나는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이제껏 그래 왔다 운명을 듣지 않았다 이를테면, 운명대로 될 리 없다는............ 그런데도 넘보게 되는 것은 일처럼 쌓여만 가는 지친 모습에서삶이 한 번이라도 슬펐던 사람들자신의 운명 이야기를 들어볼 일이다 제목 2023. 9. 12.
친구 딸 결혼식날 친구 딸 결혼식날趙司翼신부의 장밋빛 입술은 진주 미소를 드러내고 목선 흘러내린 머릿결 가냘프게 안개꽃 흐드러진 은회색 실크 드레스가 꽃길에서 푸른 풀밭으로 흘러내린다 차려입은 감청 슈트, 청자색 넥타이 잔칫날 신부 아버지 모습이어도 딸 손을 잡고 행진하는 동안 저렇게도 눈물 글썽이며 떨고 있는데 눈꽃 가루 식장 가득 우렁찬 박수소리도 부녀의 슬픈 눈물을 담아내지 못했다아내 빈자리를 함께한 딸 이들 둘에겐 30년, 그 세월이 한없는 눈물이었다2017.10.29 - 친구 立原道造 딸 결혼식에서 제목 2023. 9. 4.
운명을 말하면서 운명을 말하면서 趙司翼너는 내가 기도하던 놈방패처럼 담을 두르고 문을 지켰던 놈눈 이 멀까 봐 차라리 사랑을 맡긴 놈서운해도 굴복해야 하는 소름 끼치게 하는 놈운명에 묶인 내가 그 무엇이 답답해문자를 보내던 그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배신 앞에 혀를 깨물고 조용한 오열문지방을 붙들고 참기 힘들어온갖 추태를 지켜본 선술집 주막등처럼소멸된 내 청춘을 곁에 두고그림 그려 보니, 시를 써보니사슬에 갇힌 피조물로만 여겼지장엄한 날개 불멸(不滅)의 영역일 줄 몰랐다물은 차고 바람도 싸늘한 밤원망 길었던 세월 울부짖는 날이면 날마다문득 오래 앓은 내 모습을 보고서야외로운 발자국 마디마디 눈물 닦아 내고밀랍 같은 꿈 달빛에 녹아드는 밤다행히도 내일이 오면서오동나무는 가을 나뭇잎이 되고 있다2016년 9월 5일 -   제목 2023.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