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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3) : 바람이 울고간114

우울한 노래 우울한 노래 趙司翼 그토록 소중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 몸보다 빠른 세월 사느라 흐릿한 정신에 육신만 무거워지고 침침한 방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책상 머리맡에 촛불을 켜 놓고 밤이 가고 새벽이 올 때까지 편지를 쓴다 처진 어깨로 슬픈 사람이 되어 그립고도 슬펐던 오랜 이야기를 보면서 홀로 쓸쓸하게 걸어가는 내 모습이 마음 아프다 이 무겁고 바람 잘날 없는데 저 산은 무슨 인내를 배웠기에 조용한 침묵일까 짚신처럼 낡은 우울을 피할 수가 없고 바람이 얼굴을 작은 스침에도 말라비틀어진 윤곽선을 눈물이 흐른다 풀꽃행렬 바람에 흔들리고 솔밭길 공허로 발자국이 남아도 그냥 얼굴을 파묻은 채 푸른 숲에 있고 싶다 제목 2023. 10. 28.
이별 후에 이별 후에 趙司翼청량리발 완행열차로 가다 보면 태백산 자락 오래된 탄광 가난한 마을이 있다 빈 공간처럼 잊힌 길을 기억해 내며 걸었다 기척 없는 유리창엔 거미줄만 나부끼고 애수(哀愁)를 밥 먹듯 하던 차라리 슬퍼서 아름다웠던 여자의 추억 텅 빈 찻집에는 목각 인형뿐눈시울만 쓸쓸하고 억새풀 흔들리는데 그래도 남은 미련이 얼굴을 맞대고 둘러앉아 훌쩍이고 불러보려던 여자 이름도 잊은 채녹슨 주황색 출입문 밖을 기대 서서 다 지지 못한 그리웠던 순간들추억도 그리움 모두 잊힌 이름이 되자2015.09.20 - 사북에서  제목 2023. 10. 6.
가을날의 초상 가을날의 초상 趙司翼 햇살처럼 버들가지 나부끼는 개울 따라 나뭇잎 붉은 가을이 억새 우거진 두렁길로 왔다 이를 증언하듯 달과 별이 머물다 간 문밖에는 하늘 한구석이 갈색 깃발 펄럭이며 높이를 밀어 올리고 이를 기다리다 지친 사람일수록 심각성을 꿈에서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 때나 외로운 것들이 불꽃처럼 터지는데 어쩔 것이냐! 이 한없는 그리움을, 몸부림을 해서라도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되어야 한다 내 쓸쓸하고 외로운 생각이 헤맨 밤 어둠에 묻힌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르고 이슬에 젖은 가을밤은 쓸쓸한 그리움이 된다 달 뜬 밤 무엇이건 원고지에 쓰다 말고 골목을 기웃기웃 인사동에서 무명 시인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처럼 온통 모든 것들이 가을날 초상이 된다 제목 2023. 10. 3.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趙司翼 시(詩), 그 서정처럼 들꽃 향기 익어 가고 스치듯 들머리를 지저귀는 바람소리 오늘 밤도 세레나를 연주하는 성화의 선물에도 문득 돌아보면 나 홀로 쓸쓸했고 거뭇거뭇 얼굴에 잡티가 나부끼는 낙엽처럼 슬픈 것은 오래 산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인내와 침묵을 미덕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슬픈 사슴처럼 영혼의 울부짖음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길가에 널린 흙냄새만큼 슬픔 수북하게 씹어 뱉은 연기처럼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아직도 생애가 살아 흐르는 니체, 릴케, 괴테, 모네, 고흐, 쇼팽, 모차르트, 베토벤......; 그들 이야기가 영혼 되어 내게로 온 것이다 병 지닌 가슴에도 별 같은 희망이 피어 그러므로 요란한 돌풍에도 지치지 말 일이다 제목 2023. 9. 30.
가을비 쓸쓸한 밤 가을비 쓸쓸한 밤 趙司翼탱자나무 울타리를 퍼득이는 열매에게도 살아가는 이야기 있듯 들국화와 코스모스, 여러 들꽃들도 삶의 무게는 있어 부러질 듯 목덜미를 쥐어 잡고 찬 비 내리는 밤 그 냉기와 가속을 받아 내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이별 이야기가 가을로 든 길목에서 저마다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장독대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감나무 붉은 잎에도 생기는 남아 있어 그 짜릿한 중독성처럼 마루판에 낡은 캔버스를 펼쳐 놓고 인적 끊긴 밤 홀로 외로이잎새들 이별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제목 2023. 9. 28.
친구의 바다 친구의 바다 趙司翼 친구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 이별했던 시간 흘러 그 여름이 다시 오고 기억을 우선처럼 펼쳐봐도 저 바다만 깊은 밤을 소리 없이 울고 있다 항구에서 우두커니 캄캄한 밤 이별했던 시간을 지우면서 예전처럼 둘이 함께 별을 봤으면 좋겠다 송전탑 깜박이는 해안선 멀리 무인도는 너도 슬픈 등대 그림자가 빈 골목 가로등처럼 쓸쓸한데 고기 잡는 어부 모습이 되어 이따금씩 텅 빈 바다에 모싯돌만 덤벙덤벙 홀로 외로이 친구 이름 불라 봐도 나가사키는 친구 바다가 있는 곳이다 2016.10.18 -나가사키 항구에서 편집등록. 성우혁 제목 2023. 9. 19.
시골 간이역에서 시골 간이역에서趙司翼계절마다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적 영감에도 해가 갈수록 붓질 흐려만 지는 모순의 목덜미를 쥐어 잡고 거대 도시를 피해 오듯 피해 오면서 가로수 설레게 익어가는 남원행 시골 간이역 그 오랜 기억 거세게 밀려들면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촉촉한 눈가에 술래잡기 하던캔버스 주위를 산책하는 어릴 때 친구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그 천진하던 얼굴을 그려야겠다 박 냄새 익어 가는 초가주막 쉼터에서 간직했던 시를 술상 곁에 펼쳐 놓고 가을달 둥근 밤 별을 기다리는 동안 아득히 노을 먼 하늘이 물결처럼 곱다 계절은, 가을은, 갔다가 되돌아온데나 홀로 쓸쓸한 새벽돌아올 수 없는 징검다리 길 별 보며 간다  제목 2023. 9. 15.
흑산도 슬픈 연가 흑산도 슬픈 연가趙司翼바다 품을 파고드는 쉴 새 없는 노을 멀리파도 떼가 갈팡질팡 눈덩이처럼 밀려들고깊은 어둠 물결 휘몰아치는데등불 몇 개 뱃머리에 걸고 새벽까지홍어 잡는 어부는 텅 빈 시간을 그물에 싣고어둔 바다만 훌쩍훌쩍 파먹고 돌아오기 일쑤라 했다이런 밤 흔히 말하는 번뇌도 아니고그렇다고 혼자라는 외로움도 아니다홀로 쓸쓸해도 울컥하지만 않으면 된다흑산도 앞바다 파도 출렁이는데머리맡에 새벽 별을 풀어놓고바다와 한 몸 되어 있는 동안섬사람들 서러운 인생 이야기가깊은 밤 소리 없이 서성거리고 있다2016.08 - 흑산도에서 제목 2023. 9. 14.
운명을 듣는다 운명을 듣는다趙司翼문과 문사이 유리창을 기대 있다 보면 느릿느릿 바람 나부끼고 보이지 않는 빛들의 눈부신 경험 나의 우월이라 말했던 이젤에 놓인 캔버스 오늘 이야기도 저항뿐 인 흔적으로 찬란했던 푸른빛도 비참하게 영혼 없는 문장들만 곤경에 처해 있고 이제 와서 나 더러 어쩌라고, 이 모두 차마 어쩌라고, 지금에 와서 그것은 짚신짝처럼 외면했던 운명이었다 세월에 패인 발자국이 너무 깊어 앞날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불길함 또다시 매몰될까 두렵고 사실, 나는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이제껏 그래 왔다 운명을 듣지 않았다 이를테면, 운명대로 될 리 없다는............ 그런데도 넘보게 되는 것은 일처럼 쌓여만 가는 지친 모습에서삶이 한 번이라도 슬펐던 사람들자신의 운명 이야기를 들어볼 일이다 제목 2023. 9. 12.
친구 딸 결혼식날 친구 딸 결혼식날趙司翼신부의 장밋빛 입술은 진주 미소를 드러내고 목선 흘러내린 머릿결 가냘프게 안개꽃 흐드러진 은회색 실크 드레스가 꽃길에서 푸른 풀밭으로 흘러내린다 차려입은 감청 슈트, 청자색 넥타이 잔칫날 신부 아버지 모습이어도 딸 손을 잡고 행진하는 동안 저렇게도 눈물 글썽이며 떨고 있는데 눈꽃 가루 식장 가득 우렁찬 박수소리도 부녀의 슬픈 눈물을 담아내지 못했다아내 빈자리를 함께한 딸 이들 둘에겐 30년, 그 세월이 한없는 눈물이었다2017.10.29 - 친구 立原道造 딸 결혼식에서 제목 2023. 9. 4.
운명을 말하면서 운명을 말하면서 趙司翼 너는 내가 기도하던 놈 방패처럼 담을 두르고 문을 지켰던 놈 눈 이 멀까 봐 차라리 사랑을 맡긴 놈 서운해도 굴복해야 하는 소름 끼치게 하는 놈 운명에 묶인 내가 그 무엇이 답답해 문자를 보내던 그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배신 앞에 혀를 깨물고 조용한 오열 문지방을 붙들고 참기 힘들어 온갖 추태를 지켜본 선술집 주막등처럼 소멸된 내 청춘을 곁에 두고 그림 그려 보니, 시를 써보니 사슬에 갇힌 피조물로만 여겼지 장엄한 날개 불멸(不滅)의 영역일 줄 몰랐다 물은 차고 바람도 싸늘한 밤 원망 길었던 세월 울부짖는 날이면 날마다 문득 오래 앓은 내 모습을 보고서야 외로운 발자국 마디마디 눈물 닦아 내고 밀랍 같은 꿈 달빛에 녹아드는 밤 다행히도 내일이 오면서 오동나무는 가을 나뭇잎이 되고 .. 2023. 8. 30.
끝이 없는 길 끝이 없는 길 趙司翼 미스터리 인생에게 운명의 선택 권은 없었다 숙제처럼 풀며 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살아가는 것도 죽는 날까지 감정을 숨기고 심장 헐떡거리고 때로는 억눌리는 것들에도 운명은 말해주지 않았다 어둠 보았기에 빛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작은 마당은 마당일 뿐이지만 여러 풀꽃이 핀다 작은 공간 아름다움도 누구나 눈길 주지 않는다. 선택이다 혹한 눈 내릴 때면 난로가 있는 포근한 현관이 떠오르듯 그 생각도 내가 선택하고 취해야 할 몫 아스라한 안개 노을 몇 만 겹 푹신하게 해질 무렵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 상상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이 모든 선택을 운명으로 살고 있는 우리, 지금 이 순간도 하염없는 그대들께 듬뿍 행운의 꽃다발을 선물하겠습니다 제목 2023.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