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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간이역에서 시골 간이역에서趙司翼계절마다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적 영감에도 해가 갈수록 붓질 흐려만 지는 모순의 목덜미를 쥐어 잡고 거대 도시를 피해 오듯 피해 오면서 가로수 설레게 익어가는 남원행 시골 간이역 그 오랜 기억 거세게 밀려들면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촉촉한 눈가에 술래잡기 하던캔버스 주위를 산책하는 어릴 때 친구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그 천진하던 얼굴을 그려야겠다 박 냄새 익어 가는 초가주막 쉼터에서 간직했던 시를 술상 곁에 펼쳐 놓고 가을달 둥근 밤 별을 기다리는 동안 아득히 노을 먼 하늘이 물결처럼 곱다 계절은, 가을은, 갔다가 되돌아온데나 홀로 쓸쓸한 새벽돌아올 수 없는 징검다리 길 별 보며 간다  제목 2023. 9. 15.
흑산도 슬픈 연가 흑산도 슬픈 연가趙司翼바다 품을 파고드는 쉴 새 없는 노을 멀리파도 떼가 갈팡질팡 눈덩이처럼 밀려들고깊은 어둠 물결 휘몰아치는데등불 몇 개 뱃머리에 걸고 새벽까지홍어 잡는 어부는 텅 빈 시간을 그물에 싣고어둔 바다만 훌쩍훌쩍 파먹고 돌아오기 일쑤라 했다이런 밤 흔히 말하는 번뇌도 아니고그렇다고 혼자라는 외로움도 아니다홀로 쓸쓸해도 울컥하지만 않으면 된다흑산도 앞바다 파도 출렁이는데머리맡에 새벽 별을 풀어놓고바다와 한 몸 되어 있는 동안섬사람들 서러운 인생 이야기가깊은 밤 소리 없이 서성거리고 있다2016.08 - 흑산도에서 제목 2023. 9. 14.
운명을 듣는다 운명을 듣는다趙司翼문과 문사이 유리창을 기대 있다 보면 느릿느릿 바람 나부끼고 보이지 않는 빛들의 눈부신 경험 나의 우월이라 말했던 이젤에 놓인 캔버스 오늘 이야기도 저항뿐 인 흔적으로 찬란했던 푸른빛도 비참하게 영혼 없는 문장들만 곤경에 처해 있고 이제 와서 나 더러 어쩌라고, 이 모두 차마 어쩌라고, 지금에 와서 그것은 짚신짝처럼 외면했던 운명이었다 세월에 패인 발자국이 너무 깊어 앞날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불길함 또다시 매몰될까 두렵고 사실, 나는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이제껏 그래 왔다 운명을 듣지 않았다 이를테면, 운명대로 될 리 없다는............ 그런데도 넘보게 되는 것은 일처럼 쌓여만 가는 지친 모습에서삶이 한 번이라도 슬펐던 사람들자신의 운명 이야기를 들어볼 일이다 제목 2023. 9. 12.
도시의 결혼식 날 도시의 결혼식 날 趙司翼어쩌면 나는 무릎을 꿇고 태어났는지자비의 입맞춤 속에 태어났는지거리는 완벽하게 끔찍한 인형 공장에서 출고된 것들로언제나처럼 내가 왜 이렇게 도시와 논쟁을 하고 있을까나를 미라처럼 감싸고 입술 얄팍하게설교자들 우글거리는 희생양 찾아 떠도는 발자국들 뿐인간 이야기 절박한데들불처럼 온갖 수단들만 타오르고어느 비 오는 날 퇴근길 쓰레기통 신문에서50대 가장의 고독한 죽음, 슬픈 운명도 가슴 아픈데비수에 꽂혀 죽어 가는 젊은 사람들요즘 이야기를 견딘 다는 건요단강을 건너는 어느 날이 올 때까지 하늘이시여, 지구여,옹이가 박혀 뒤틀린 의자처럼 도시에서지친 영혼 쓸쓸한 이야기 속에 세상 태어날 때운명에 쓰인 대로, 인생 다하는 날까지 살아가기엔뿌리까지 흔적 없이 끝내 멸종을 항해하는회전목마를 .. 2023. 9. 10.
송수권 . 시골길 또는 술통 송수권 . 시골길 또는 술통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비틀거린다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주모가 나와 섰다 술통들이 뛰어내린다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The Wine Barrel and the Country Road (Song Su-kwon) The wine barrel jostles on the bike carrier. The grass smell turns the spokes. The spokes make the wine splash. The gravel jumps up over the barrel and falls on the gr.. 2023. 9. 10.
이별하는 밤을 말없이 이별하는 밤을 말없이趙司翼그 푸르게 단단했던 몸통이 상처처럼 휘청휘청 몸을 구부리고 이별길 홀로 외롭게 간다 어느 훗날 하루 가고 이틀 가면 빗길 쓸쓸하게 단풍잎도 구겨진 낙엽으로 연기처럼 어디론 가 뿔뿔이 그렇게 아닌 밤중을 잊힌 이름이 되어 떠돌 것을 생각하자니사루비아 지친 꽃이 울부짖는  애원의 모습 그런 걸 그저 바라만 본다 도처에는 목놓아 울어야 할 외로움만 가득하고 빛과 계절 뒤엉킨 틈에 섞이어 남겨진 시간이 외상값 피해 가듯 말없이 간다2023.09.06  제목 2023. 9. 8.
고요한 순간 고요한 순간趙司翼불씨처럼 소용돌이치며 미끄러지듯 떠오르는 아침 해 찬란하게 이슬 내린 새벽 대지의 가을 문이 활짝 열린다 빛나는 태양 아래 맥문동 보라 꽃이 속삭이고 멀리 시화호 안개 낀 물결이어도 잠에서 깬 처음 잠시 동안 풀린 눈꺼풀을 그냥 둔 채로 가을 뛰는 맥박 소리에만 집중했다 제철냄새 푸르던 푸성귀 작은 텃 밭도 잡풀 무성한 질경이에게 모두 주고 이슬 맺힌 거미줄서 늙은 거미가 하품을 한다 아침 딱딱한 문턱에 턱을 괴고 쑥쑥 커가는 가을 향기를 지켜보면서잠시 동안 미친 듯이 홀려 있었다2023.09.06  제목 2023. 9. 6.
아담 미키에 비츠 . 바다의 고요함 아담 미키에 비츠 . 바다의 고요함 천막 위의 깃발은 간신히 흔들리고, 태양 아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인다 젊은 처녀의 꿈, 그리고 그 약속이 이뤄질 듯 깨어나는 기쁨, 돛에 매달린 원통형 실린더 위의 돛은 전쟁이 끝났을 때 깃발처럼 펄럭이고 있다 쇠사슬에 묶인 배는 물 위에서 흔들리고, 선장 선원들과 함께 웃음 짓는 승객들. 오 바다여, 당신의 행복한 생명체 사이에서, 그 아래 폴립들이 폭풍 속에 잠들어 있다 긴팔을 치켜세우고 날려버릴 준비를 한다 오, 힘들었던 기억, 복잡한 생각, 졸림 어느 혹독한 날 평화롭게 모든 것들을 지울 것이다 그리고 모든 흔적을 너의 고요한 가슴에 새길 것이다 ◆ (The Calm Of The Sea by Adam Mickiewicz) The flag on the pavili.. 2023. 9. 5.
친구 딸 결혼식날 친구 딸 결혼식날趙司翼신부의 장밋빛 입술은 진주 미소를 드러내고 목선 흘러내린 머릿결 가냘프게 안개꽃 흐드러진 은회색 실크 드레스가 꽃길에서 푸른 풀밭으로 흘러내린다 차려입은 감청 슈트, 청자색 넥타이 잔칫날 신부 아버지 모습이어도 딸 손을 잡고 행진하는 동안 저렇게도 눈물 글썽이며 떨고 있는데 눈꽃 가루 식장 가득 우렁찬 박수소리도 부녀의 슬픈 눈물을 담아내지 못했다아내 빈자리를 함께한 딸 이들 둘에겐 30년, 그 세월이 한없는 눈물이었다2017.10.29 - 친구 立原道造 딸 결혼식에서 제목 2023. 9. 4.
웃는 해바라기 모습도 웃는 해바라기 모습도趙司翼풀 방천을 웃고 있는 해바라기 햇살 입맞춤도갈색 바람 살랑이며 오르락내리락수수 알 익어 가는 밭길에서도랑물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에도다락 논 대열을 이루고가닥가닥 고개 숙인 나락들 익어가는 풍경에도들판 모두 여름 문이 닫히면서목련꽃 지던 날, 올 때 한 약속처럼 그 계절이 말없이 간다아쉬움이거나그리움이거나지평 멀리 이별 이야기는뒷 날 어느 한가할 때 듣기로 했다뭐건 간에 이별이란 쓸쓸함이 된다 2023.09.03 - 수리산 들녘에서친구들과 만남 뒤엔 계절 같은 허전함이 남는다  제목 2023. 9. 3.
푸른 밤을 달빛 아래 푸른 밤을 달빛 아래趙司翼전직 교장선생네 철 지난 장미꽃이 덩굴 담에 피었다마루 등 불빛을 풀벌레 소란스런 밤'슈퍼 블루문'은 이토록 그리움을 던져 놓고이천삼십칠 년을 기약하며 그렇게 멀어져 간다어느 한세월이 날리듯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데우리 이렇게 이별하는 동안안개꽃 같은 은하수 어린 눈빛도 쓸쓸하고오늘 같은 수없는 밤을 어찌 견딜 수 있을까그 무엇도 이별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래도 외로운 밤이다바쁘게 귀로(歸路) 길이면서 누가 오라고 했나살랑살랑 갈바람은 나뭇잎새 훑어 놓고오늘처럼 가을이 올 적마다모질고 싸늘한 기억 헤매게 될까 가 두렵다은행나무 질끈 동여 맨빨랫줄에서 흰색 모시적삼이 졸고 있다너와 나는 지구 위를 조용히 지나가는 중이다2023.08.31 밤. 이웃한 교장댁에서  제목 2023. 9. 1.
수선화 질 때 우리 만나자 수선화 질 때 우리 만나자 . 趙司翼 별이 빛나는 밤 반딧불이 등불 삼아 말없이 간다 극지점이 물결치듯 녹아내리고 대륙이 활화산처럼 불타 오르고 갈기갈기 대지는 내장을 드러 내놓고 피눈물 잦아질 날 없는 세상 소리 피해 가듯 여름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간다 대지가 몸을 달구고, 바닷물 끓어 오르고 네 잘못도 아닌데 얼마나 소연(蕭然)하랴 갈색 구름 하늘 많아지면 캔버스 속 푸른 풍경이 그리울 것만 같고 밤 귀뚜라미 원음 잦아질 때면 어느 낯선 골짜기에서 펑펑 널 찾아 헤맬 것 같다 벌링턴 언덕에서 너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너를 '여름'이라 말하며 잊지 않겠다 시낭송 같은 봄이 가고 수선화 꽃 질 때 우리 만나자 * Let's meet when the daffodils fall by David.. 2023.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