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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흔적만 이별의 흔적만 趙司翼새벽 별 흐릿하고 쌓인 눈 속을 친구는 갔을까자일에 몸을 맡기고 사투에도 등성에 이르지 못했다따갑도록 찬 햇볕아래 빙벽뿐 친구 모습은 없었다눈물을 껴안고 죽지 못해 살아 있는 나는이렇게, 전생에서 다하지 못한 무슨 이별이 남아 있기에또 마주치고 마는 이별 앞에 피눈물이 나고이 세상엔 저승만 존재하는 것 같고나 이렇게 핏물을 머금고 모진 눈물에도저것 봐, 미치도록 환장할 듯 별 푸른 밤이 못내 원망스럽다이별이 운명으로 예비되어 있었을까내 몸에 서린 슬픔만 글썽이고캄캄한 도솔천의 밤처럼 깊은 밤을 혼자 울었다하늘 멀리 거기 누구였을까, 해도산 머리엔 눈 가득 별뿐이고날이 밝도록 친구 모습은 돌아오지 않았다 2014.10.17 - Mont Blanc Mont Blanc  제목 2023. 10. 25.
검은 새 검은 새 趙司翼 도시가 타버린 공기의 분자처럼 창백한 뼈대 속에 온통 물든 것들로 히틀러 지문이 가득했고 당시를 살다 간 시인의 동산 길 오르다 마주친 나치 시대 욕된 하늘에 하켄크로이츠 검은 깃발이 아직도 펄럭이고 일본만 모르는 욱일기 피의 공식처럼 유대인이나 조선인이나 피의 물결 그 만행들이 폭풍처럼 눈앞에서 갔다가 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두 시간 전, 또 누군가가 히틀러 찬가를 부르며 골목으로 기어 든다 작은 이슬에도 깨질 것 같은 불면의 밤 가지를 끊어놓을 듯 찬바람에 낙엽 날리는 바로크식 백색 창틀에 기대어 서서 헤르만 헤세의 발자취만 기억되고 부러진 날개 파닥이는 검은 새를 그렸다 2023.10.20 - Berlin Lichtenberg 에서 제목 2023. 10. 24.
윤동주 . 편지 윤동주 . 편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Letter by Yun Dong-ju As I write I miss you, no, I better not say. Just put it down as a long time passed. Instead of saying I really can't get over her With the long, long stories I sewed in a line, Just write her t.. 2023. 10. 22.
별 아래 누워 있는 동안 별 아래 누워 있는 동안 趙司翼 빛과 어둠이 강에 몸을 부릴 때 거기엔 삶과 죽음이 함께하고 있음을 알았다 마주친 적 없는 나를 어디선가 기억해 내며 어둔 별자리에 소원을 빌던 순간 나와 나는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령 계절처럼 낯설지라도 기도의 별을 하늘에 매달고 빌었던 소원 그 영원으로 숨길 것도 없이 눈물 같은 간절함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빌었다 운명은 비애보다 축복이 많다는 것을 믿으며 노변의 빛 근처에서 몸을 녹이고 싶다 제목 2023. 10. 20.
나는 언제나 그곳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곳이었다 趙司翼 스스로를 저버리고 편리한 것만 만지작거렸다 온통 낡은 시간을 날이면 날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옛 기억은 꺼져가는 불씨처럼 허전하고 그마저도 해 질 때 잎이 진 마른 나뭇가지처럼 실속 없이 내 안의 헛된 전리품들만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언제인가부터 예전의 그 길도 아니고 개미집 모습 엃힌 세월인데도 남일같이 그저 바라보며 내가 그토록 속살 텅 비어 노을처럼 그러한 인생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별 하나 떨어져도 어둡고 칙칙하고 숨이 막히고 공원에 잠든 하얀 조각상에 지나지 않는 목소리도 없고 시력도 없고 어둠 너 때문에 눈이 멀었었다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몸에 박힌 검은 그림자 마음이 병들도록 너는 그렇게 눌러앉아 그러는지 부탁이다 어둠아 서둘러 다오 내셔널 지오그래픽 표지 그 맑.. 2023. 10. 19.
신달자 . 낙서 신달자 . 낙서 고향 집 낡은 벽 어지러운 글씨 본 적 없는 어설픈 기차 그림 어디에도 내려놓을 곳 없었던 내 마음의 외딴 방 앉은뱅이 글씨는 아직도 일어서지 못하고 흐릿하게 지워진 기차는 제대로 한번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느려 마음 먼저 일어나 서둘러 서울 와 버린 낙서의 찢긴 날개들 내 심장에서 가끔 퍼덕거린다 맥박 소리보다 더 빠른 퍼덕거림 밑에 상상의 볍씨 하나 오롯하게 터진다 푸른 정신, 예술의 진원지가 거기였다 Doodling by Shin Dal-ja A poor drawing of a train and dizzy writings occupy an old wall of my parents’ home– a solitary room of my heart that couldn’t be kept d.. 2023. 10. 17.
가을이면 슬픈 것들로 하여 가을이면 슬픈 것들로 하여 趙司翼 저 타는 황혼 쓸쓸해서 허리춤을 둘러보니 문득 보게 되는 바람 속을 들국화 꽃이 울고 있다 해질 무렵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에 길을 잃고 서성거리는 내 모습이 슬픈 순간 혼자만의 울음으로 너무 많은 추억을 불 싸지르고 싶다 내 이러한 원인의 중심에 가슴새가 울부짖는 피의 절규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온통 침묵보다 더 한 것들로 허허롭고 풀밭을 홀로 풀 꽃에도 이별은 있었으니 바람결에 얼굴이 스칠 때마다 마음만 병들고 외롭고 쓸쓸하고 빈 들을 홀로 서서 참으로 흔들리는 갈잎 소리뿐 훌쩍 거리며 시들어 가는 허수아비 벌판을 아스라이 별 뜬 밤만 눈에 들어온다 제목 2023. 10. 16.
가을밤을 동경에서 가을밤을 동경에서 趙司翼 초대한다기에 기다렸는데 편지는 오지 않았다 눈 뜬 밤을 늙은 나무는 잎을 털어 내고 밤 새도록 빈 하늘만 이렇게 쓸쓸할 때면 굴뚝 연기 모락모락 시골집이 생각나고 죽는 날까지 거저 주어진 것은 없다 가을도 그렇다 선택도 아니고 피할 수도 없고 좋아도 싫어도 우리는 한 세월을 가을 속에 던져주어야 한다 내 남은 여생은 작아만 가고 어루만지면서 눈시울이 이다지도 서러울까 통영 친구 회갑연은 자녀들과 행복했는지 ! 기다렸는데 소식은 없고 먼 하늘 별만 있다 이 계절엔 누구나 한 번쯤 얼굴을 숙이고 소쩍새 우는 밤 그렇게 눈물 고개를 넘는다 이래도 저래도 가는 게 세월이고 인생인데 세상 사람들아 내 친구들아 이것저것 무엇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시를 쓰면서 편지를 쓰면서 그리움을 속.. 2023. 10. 14.
시든 가슴을 문지르고 시든 가슴을 문지르고 趙司翼 휘갈겨 쓴 작은 소네트 몇 편에서 말채나무 꽃 같은 별이 쏟아지고 그냥 푸른 별도 별빛이지만 헛것 같은 추억을 가슴으로 항구에서 내가 선택한 시간도 아닌데 시계는 똑딱거리고 붓질이 멈추고 펜을 떨어뜨리고 먼지의 입자처럼 떠도는 게 인생인데 굳이 미래의 닫힌 상자를 열어젖히고 내가 남이 되고 적이 되는 슬픈 논쟁은 그만하자 해안가 비단 조개가 울먹이고 밤열차가 해적처럼 기적 소리 슬픈 밤 갈색 빵 부스러기 같은 초상화가 테이블에 울고 있다 인생 백미러, 그 모습 모두 지우고 세상 손길이 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 되자 저 세상이 흔들 때까지 따뜻이 살자 제목 2023. 10. 11.
오세영 . 나를 지우고 오세영 . 나를 지우고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Erasing Myself by Oh Sae-young On the mountain, to live along with the mountain is to become the mountain If a tree erases itself, it becomes a forest; if a forest erases.. 2023. 10. 10.
이별 후에 이별 후에 趙司翼청량리발 완행열차로 가다 보면 태백산 자락 오래된 탄광 가난한 마을이 있다 빈 공간처럼 잊힌 길을 기억해 내며 걸었다 기척 없는 유리창엔 거미줄만 나부끼고 애수(哀愁)를 밥 먹듯 하던 차라리 슬퍼서 아름다웠던 여자의 추억 텅 빈 찻집에는 목각 인형뿐눈시울만 쓸쓸하고 억새풀 흔들리는데 그래도 남은 미련이 얼굴을 맞대고 둘러앉아 훌쩍이고 불러보려던 여자 이름도 잊은 채녹슨 주황색 출입문 밖을 기대 서서 다 지지 못한 그리웠던 순간들추억도 그리움 모두 잊힌 이름이 되자2015.09.20 - 사북에서  제목 2023. 10. 6.
클리포드 앨런 . 뭔가를 느끼고 싶어도 뭔가를 느끼고 싶어도 클리포드 앨런 당신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고통을 참아 본 적이 있습니까 분명 울고 있었을 텐 데도, 눈물을 닦아 주려 해도 눈물 자국이 없었고 텅 빈 공허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세상은 그저 당신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떤 감정에도 무감각하고 실제 고통을 느낀다 해도 현실이라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누워 있는 동안에도 나는 눈을 감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를 주시고 언젠가는 느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Wanting To Feel Something by Clifford Allen Have you ever held in pain to the point where it seemed like you didn't care? You could've swor.. 2023.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