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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던 봄은 없고 기다렸던 봄은 없고 趙司翼 강화들 먼동 멀겋게 햇살 차 오르는 아침나절 입춘 날 찾아온 봄이 서리 솟은 풀밭에서 알몸으로 떨고 있다 절기로 봐서 겨울 짐을 부릴 때도 되었는데 매화나무 여린 꽃가지에 잔설 희끗희끗 보기가 안타깝고 간 밤 나의 모진 애원에도 기다렸던 봄은 없고 주춤거리는 겨울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 봄과 겨울, 겹친 틈을 또 한 계절이 삐걱 거리는 동안 애꿎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들녘에서, 방천에서, 산허리 늘어선 봄기운이 그렇다 이런 날은 아무 때나 봄이었으면 좋겠다 2024.02.10 - 설날 마니산 가는 동안 제목 2024. 2. 17.
조병화 . 입춘(立春) 조병화 . 입춘(立春) 아직은 얼어 있으리한 나뭇가지 가지에서살결을 찢으며 하늘로솟아오르는 싹들아, 이걸 생명이라고 하던가입춘은그렇게 내게로 다가오며까닭 모르는 그리움이온몸을 쑤신다이걸 어찌하리 어머님저에겐 이젠 봄이 와도봄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봄 냄새나는 눈이 내려도.  .  제목 2024. 2. 15.
돌로미티 산간마을 돌로미티 산간마을趙司翼   들쭉날쭉 절벽 울부짖는 바람 울부짖더니통나무집 처마 끝에 수정처럼 백합 화환을 내 걸고내가 동경하는 땅! '밸류노' 언덕을 숲나무들이 허리를 굽히고 비탈면에 누워 있다 저 불안한 절벽의 외침이 '라바레도' 창백한 하늘을 질주할 때 산꾼들 오래된 영혼이 통곡하며 울부짖는 소리다 오늘도 하늘엔 눈물이 배었고 그대들 슬픈 생애와 묻힌 이름 위로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데 슬픈 감정을 마음 깊이 문신으로 새기며 아침 해가 현관문에 남아 있을 때 떨고 있는 슬픔을 원고지에 남겨야겠다 땅 속 깊이 봄을 기다리는 새싹들이 물결처럼 피었다2017년 3월 12일 - 벨루노에서  돌로미티 (Dolomites)는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알프스 산맥으로 이탈리아 3개 지역인 (베네토, 트렌티노 알토 .. 2024. 2. 12.
아버지 세월 아버지 세월 趙司翼야심한 밤 무슨 일로 절규하듯 설움 모르겠고뜬눈으로 마디마디 뼈아픔도 설원인데 응결된 지평, 날 밝으면서 목련 꽃눈이 나비처럼, 그럴 때쯤 오래전 아버지를 눈물 속에 여의었지 눈보라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주말이면 아버지의 술 취한 저녁이 오고 자식들 심장을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 가난으로 아픈 그 시절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자식 사랑, 아버지는 그러하셨다지고 또 지고 세월 흘러도 그래도 남은 슬픔 다 하지 못한 날 당신의 뜨거운 숨결 구름처럼 이는데 추억은 갈수록 쓸쓸하고 아직도 엉킨 눈물 가슴속을 짜낼 수 없는 그리움이 깊게 깊게 맺힌다 1990.01.18 제목 2024. 2. 9.
니혼바시 증권거래소 니혼바시 증권거래소 趙司翼모스 부호처럼 전광판이 깜빡이고잿더미를 우글우글 탄식들이 장마당에 쏟아진다 그것은 게으름도 아니고 무기력도 아니다 덫에 걸린 사람들 자세이고 모습이다 강이 바다를 만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되어 영원한 것처럼여기는 그런 것도 아니고,구체(具體)가 없는 인생 여정을도미노처럼 전광판이 요동칠 때마다 허무하게 좌절 속을 모습들이뒷골목 주막에 취해 객담을 털어내는 동안에도 곡예를 하듯 이들 주변으로 위태하게 외줄 꾸러미가 쌓여만 간다 별빛 곱게 우주 이야기가 긴자(銀座)의 빌딩 숲을 넘치는 밤실패한 어깨들끼리 시간을 태우며2019. 02. 24 - 日本証券取引所  제목 2024. 2. 5.
김영재 . 천왕봉 김영재 . 천왕봉 오르는 길 멀고 길지만 머무를 시간 너무 짧구나 이제껏 오르지 못하고 멀리서만 바라본 곳 단 한번 꼭 오르고 싶었던 내 삶의 정수리 내 대신 누가 험한 산길 오르고 오르겠느냐 두 무릎 꺾이며 꺾이며 어리석었던 나를 버렸다 산아래 고요히 누운 세상 아! 그걸 보며 나를 또 꺾는다 Heavenly King Summit by Kim Young-jae The ascent was far and long but I stayed there only a moment– the place that I used to see only from afar, having never climbed; the top of my life that I wished to climb surely once. Who would .. 2024. 1. 31.
프라하에 있을 때 프라하에 있을 때 趙司翼 기억으론 몸짓 우아하게 들꽃향이 나고 시대의 모더니즘을 살던 여자 80년대 프라하에서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 인문학에 갇혀 살던 그 오랜 이야기와 저벅저벅 밤늦게까지 카를교 바닥 돌에 수북이 쌓인 눈길을 걸었다 연인들 혼잡한 다리 난간을 기대 서서 지금은 수많은 세월이 벽을 두른 옛일이라 할지라도 술 취한 추억이 잔을 들고 또 술을 마신다 보행로 끝 어두운 구석에서 내 그림자가 거리에 누워 있는 동안 한겨울은 자정을 껴안고 깊어 가는데 강물 기어가는 그 수평 위로 판철 조각처럼 연청색 물거품이 유등 되어 침묵을 나대는 밤 울프와 호흡하면서 찬 겨울 카를교에서 2023.11.24 - Czech Prague에서 제목 2024. 1. 30.
문태준 . 눈 내리는 밤 문태준 . 눈 내리는 밤 말간 눈을 한 애인이여, 동공에 살던 은빛 비늘이여 오늘은 눈이 내린다 목에 하얀 수건을 둘러놓고 얼굴을 씻겨주던 가난한 애인이여, 외로운 천체에 성스러운 고요가 내린다 나는 눈을 감는다 손길이 나의 얼굴을 다 씻겨주는 시간을 The Snowy Night by Moon Tae-jun who had pure eyes my lover oh, the silver scales that occupied your eyes. Tonight snow falls. Oh, my poor lover who wrapped my neck with a white towel and washed my face, a sacred quiet descends upon the lonely planet. I clos.. 2024. 1. 25.
별이 빛나는 밤 (2) 별이 빛나는 밤 (2) 趙司翼 울타리 담 수북한 눈 속을 신음하며 피어있는 진달래꽃, 개나리 꽃, 생태계 변화가 주는 경고의 시그널이다 꽃들이 눈 속에서 제철 가면을 벗어던진 겨울을 원망하며 울부짖는다 달의 여신 '아켈로이스'의 파르르 입술처럼 꽃들의 피맺힌 울음 이러한데 늙고 지친 병든 세월에 섞이지 말고 미켈란젤로가 그린 세 명의 천사를 따라 곱게 흐르는 물처럼 별이 빛나는 밤 무(無)의 세계로 운명 정해진 날 속세의 관할권 범위를 벗어 나고 싶다 갈색 목판화에 새겨진 내 모습에서 미움을 보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가 되기 전에 고통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2016. 01. 22 - 은사님 장례식에서 * 문득 (빈센트 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난다 "내가 종교에 대한 끔찍한 필요.. 2024. 1. 23.
곽재구 . 그리운 남쪽 곽재구 . 그리운 남쪽 그곳은 어디인가 바라보면 산모퉁이 눈물처럼 진달래꽃 피어나던 곳은 우리가 매듭 굵은 손을 모아 여어이 여어이 부르면 여어이 여어이 눈물 섞인 구름으로 피맺힌 울음들이 되살아나는 그곳은 돌아보면 날 저물어 어둠이 깊어 홀로 누워 슬픔이 되는 그리운 땅에 오늘은 누가 정 깊은 저 뜨거운 목마름을 던지는지 아느냐 젊은 시인이여 눈뜨고 훤히 보이는 백일의 이 땅의 어디에도 가을바람 불면 가을바람 소리로 봄바람 일면 푸른 봄바람 소리로 강냉이 풋고추 눈 속의 겨울 애벌레와도 같은 죽지 않는 이 땅의 서러운 힘들이 저 숨죽인 그리움의 밀물소리로 우리 쓰러진 가슴 위에 피어나고 있음을 The South I Long for by Kwak Je-gu Where is the place? If you.. 2024. 1. 19.
어둔 밤을 홀로 외로이 어둔 밤을 홀로 외로이 趙司翼 또 이렇게 흐르는 하루와 이별하면서 도나우 강 전망대 재즈바에서 보는 창밖 사람들 터벅터벅 즐겁게들 행복했는지! 흔들리는 불빛처럼 쓸쓸해 보이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기쁘고 슬픈 일 모두 그렇듯이 세상 걱정 없어 보여도 가면 속에 비명을 감추고 눈물을 숨기고 평생을 업보(業報)로 이래도, 저래도, 나는 괜찮다 지나치게 현명하려고 발버둥만 아니면 된다 인생이 시련처럼 느껴질 때면 나를 둘러싼 세상 이치가 그런 거라고, 운명의 캔버스에 붓 칠 어루만지며 어두운 밤을 또 어두운 바에서 울림 외로운 쇼팽 녹턴을 청해 들으며 슬픈 도시 부다페스트를 호흡하고 있다 2023.11.23 - Hungary 제목 2024. 1. 17.
제임스 릴 . 기쁨의 노래 기쁨의 노래 by James Lil 자작나무와 솔송나무를 보라색으로 트리밍 하고 숨결 같은 바람과 흔들리는 나뭇잎 미풍 속의 사이프러스 향기가 별이 빛나는 저녁 천사들 노래를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보시다시피,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나는 살아있다 나는 아름다운 모든 것과 좋은 관계를 맺는 하늘의 깃털이며 푸른 들판을 달리는 짐승이며 바람을 노는 날짐승이다 나는 가장 먼 별이다 나는 비의 포효이다 나는 호수에 떠 있는 달의 긴 발자국이다 나는 황혼 속에 서 있는 사슴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의 꿈이다 인생이 의미하는 무엇이건 간에 욕심 없이 살아간다는 일, 참 어려운 일 같지만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당신이 그렇습니다 지구상에서 어떤 존재이든 소소한 농담에도 늘 웃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James Lil (제.. 2024.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