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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4) : 길 위의 날60

꽃이 되고 싶다 꽃이 되고 싶다 趙司翼 기울어가는 햇살 멀리 노을 익어 가고물색 하늘 너울대는 들판 멀리풀숲 우거진 언덕까지 억새 무성한데그동안을 사는 동안 나는 무엇을 남기며 살아왔을까그저 바라보면서 참고 견디기엔슬퍼 오면서 떨린 가슴만 절름거리고옆구리를 툭툭 무언가가!그것은 들길을 하염없는 내 모습이었고풀벌레 울음 같은 저녁 들판에서무게를 더하며 어두워 가는달맞이꽃 외롭고 쓸쓸하고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붉게 젖어나도 너처럼 밤을 기다리는 꽃이 된다가물가물 나뭇잎들이풍선처럼 그런 계절이라 더욱 그렇다 2020.10.08 - 長岡京(나가오카교)  제목 2024. 9. 22.
에게해의 밤 에게해의 밤 趙司翼 저 바다 물빛 같은 별이 정수리로밤의 여신 닉스의 축복이라 한들 여관집 남색 창문 어둠 깊어지면서 야심할수록 발길 뜸한 거리의 불빛만 거세어 오고 사람 그리운 정을 이기지 못해 이럴 땐 차라리 윤곽뿐인 일상이 되자 오늘도 세상 물정이  이별하고 죽어 가고  나 혼자인 것을 알게 되면서 드러난 고독의 무게를 억제할 수가 없어 얼굴에 쌓인 눈물 털어 내봐도 홀로 숙연한 시간을 빗물처럼그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거무스레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말고,일주일을 함께 했던 어부 Yannis Moralis 씨는 코로나로 2021년 3월 19일 아테네 리모스텐 병원에서 사망하였다는 메일을 아들로부터 전해 들었다 제목 2024. 8. 29.
린든나무 산책로 린든나무 산책로趙司翼 일던 바람 못 견디게 꿈틀거리기도 하는 린든나무 줄지어 선 릴케의 산책로 무한 고독을 인지하는 순간 꽃향기 우거진 무덤 터를 목전에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고 세월 거슬러 시인의 구체(具體)가 숨결처럼 울렁인다 어렴풋이 그 세월을 짐작하는 동안 바람에 우는 잎들 슬픔도 슬픔이지만 나 지금을 어떻게 뉘우쳐야 할까 그도 나처럼 천상을 생각하며 울었던 적 있었는지! 달 밝고 별 빛나는 어느 날 밤남은 세월 그 완성을 빌던 기도를 내려놓고 별이라 불리는 느낌을 찾아 푸르고 늘 푸른 세상으로 가야지 2016.08.27  -  Switzerland Beiras Muzot에서  제목 2024. 8. 19.
꽃들과 밤을 이야기하면서 꽃들과 밤을 이야기하면서 趙司翼 별 반짝이는 깜깜한 언덕으로   여명(黎明) 열리더니 먼 데서 시선이 날아든다 달팽이처럼 늦잠을 꾸물대던 별 몇 개가 눈 뜬 하늘로 지워지면서 나는 무너지는 밤을 혼자 서 있었다 밤을 놀던 여우가 비명을 등에 업고 도망을 한다 이 아침은 어디서 놀다 왔을까 별 지닌 밤은 또 어디로 가고 있을까 온타리오 메이 마운틴 수만 기슭마다 계절 색을 띤 나무들이 얼굴 부대끼며 사는 모습 그러하듯 꽃들과 밤을 이야기하면서 호수가 물결 더불어 사는 것처럼 2017 8 27  -   Ontario  Maple에서  제목 2024. 7. 28.
내 영혼의 슬픈 날 내 영혼의 슬픈 날趙司翼 잎새들 부서지는 풍경이 못내 마음 아프고시인의 오랜 생애를 생각하면서그가 잠든 공원에 촛불 하나 걸어 놓는다온통 슬픈 것들은 어디서 오나세월의 자락을 넘나들 때마다그림자처럼 무너지는 슬픔을 언제까지 울어야 할까쓰다 둔 글, 그 간절함 인지도 모른다나는 끝내 폴 베를렌의 서사를 쓰지 못한 채어두워가는 그림자만 끌어안고무심한 타국의 하늘을 혼자 누워분간 모를 눈물만 한가득슬픈 영혼이 울고 있는 새벽공원 관리소 경광등 불빛들 뒤엉켜어딘가로 흩어지는 밤을 홀로 외로이 2017.11.18 - '폴 베를렌'의  묘지 '바티뇰'에서   Solveig's Song - Barbara Bonney 2024. 7. 23.
七月 序曲 七月 序曲趙司翼 익시온(Ixion)과 구름의 포옹에서 태어났음을 칠월 너는 그렇게 내 앞에 던져졌으니 이 푸른 계절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보다 더 깊숙이 뿌려 놓은 청록의 핏발 자국 풀뿌리 희끗거리는 들길을 눌러 밟고 집시처럼 잎들 나부끼는 바람 속을 걸어야겠다 푸르게 깊어 가는 어둠을 두드리며 어쩌지, 성난 빗줄기처럼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의 눈물거울 앞에 내어 놓고 달래 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우리가 늙어 가는 모습처럼 칠월이 갈색 올리브로 뒤덮이기만을 2016.07.02 -  헤파이스토스 신전 언덕에서 익시온 (Ixion)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 아레스 혹은 플레기아스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후에 라피테스족의 왕이 되었다 익시온은 에이오네우스의 딸인 디아와 결혼했는데.. 2024. 7. 5.
노래의 날개를 타고 노래의 날개를 타고趙司翼감정 표현이 추상적일지라도비둘기 구구구, 평화의 전령처럼 그러한 내가 되고 싶다어두운 세상 작은 빛을 느껴서라도오동나무 향이 배인 바구니에주섬주섬 이슬처럼 꽃 같은 꿈을 담아야겠다잔잔하게 아롱진 날이다가도까만 밤처럼 어둠을 흔들면서바람 불고 파도치는 삶의 굴곡이때도 없이 찾아드는 깜깜한 절벽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분별 모르고 산다는 것은몸 따로 마음 따로 나와 내가 겉도는 일별 푸른 밤을 누워서 보는 이러한 때유쾌하게 불러 보고 싶던 노래저 먼 별로 노래의 날개를 타고 2017.10.24 - in Paris, Musée d'Orsay에서  제목 2024. 6. 26.
그 오월의 기억 그 오월의 기억 趙司翼 그 때 광주의 5월은 살인의 자유를군부의 미친개들이 킁킁거리며피비린내 난무하게 빗발치듯 총탄을 쏟아붓고더러워진 하늘, 해 질 녘을날이면 날마다 애국가는 제창되고길을 가다가 국기 하강식 때가슴에 손을 얹고 국민 모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신군부 살인, 그 만행을 대변하는행위의 당위성을 변론하면서살인의 실상이 철저히 왜곡된 채 언론은 그랬다죽는 순간까지 총탄에 맞서면서민주의 외침은 피의 물결인데텔레비전에서도, 신문에서도,진실을 굳게 닫은 채 관변 언론들은 그랬었다그것뿐이었다시민의 소리로 민주를 외친 들꽃을 꽃이라 부르지 못한,그 시대 지성(知性) 모두 비굴한 양심뿐살인의 총탄에 울림마저 막혀버리고,죽어야 할 사람만 죽어야 했는지!5·18 광주 민주화 운동영령의 묘, 그 오월의 정신이 숨.. 2024. 5. 12.
슬픔일까 두려워서 슬픔일까 두려워서  趙司翼수척했던 나스펠트 호수의 밤이 가고 과육이 풍부한 시칠리아산 와인으로 햇살 가득 편백나무 발코니에서 물안개에 젖어알프스가 인접한 인스브루크를 멍하니 에든버러와 제네바를 떠나 오면서 다시 오겠다는 약속 굳게 하지 못했다 남은 인생 짧을 것만 같고 왜 그런지 그 약속이 세월 속을 쓸쓸하게 떨며 울고 있을 것만 같아서2023.11.09  -  Innsbruck Tyrol에서  제목 2024. 4. 30.
카슈미르에서 온 엽서 카슈미르에서 온 엽서 趙司翼 잊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흑백 네거티브로 히말라야 그 웅장했던 모습을, 멈춘 기억은 본질이 갖는 변동성마저 묶어 놓고 무심하게도 뜻 모를 영속성만 증폭된 세월이었다 눈 날리는데 카슈미르를 출발하던 날 배낭에서 꾸깃 꾸깃 엽서 한 장 그냥 버리기가 아쉬워서였을까 발신인도, 수신인도, 'David cho'라 하여생각 없이 우체통에 넣었는데 그 오랜 세월 죽지도 않고 어찌 살았는지!  찾아왔는지! 숙소 우체통에서 엽서를 발견하던 순간 기억의 초점마저 흔들거리고 일련의 활성물질처럼 세월에 시들어 가던 세포가 되살아 나면서 省察하는 마음 가지려 해도 굳어버린 내 인생 불가피성이 마음 아프다  2004년 10월 26일  카슈미르를 출발하면서 보낸 그림엽서가 9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지나.. 2024. 4. 24.
콜로라도 록키에서 콜로라도 록키에서趙司翼누군가를 덮칠 것만 같고, 험준한데감격한 영혼이 심장 솟구치면서 눈물 흘리기 전에 황금빛 천봉 사이 어렴풋한 계곡을 흘러내리는 폭포수 그림 같은 소리를 화폭에 담을 수가 없어 불타는 태양 조각들로 쓸쓸함을 채워야겠다 달 없는 밤 고요한 어둠처럼 콜로라도를 흐르는 록키 산맥 깎아지른 슬픈 순간들만 하염없이 산은 문을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캔버스를 물빛처럼 풀어헤치고 침묵 속에 우두커니 푸른 하늘 운모의 보석처럼 빛나고 루비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와 자수정으로 보고 있기가 견딜 수 없어 그 거대한 성채에 가슴을 문지르며2012.08.24 -  Colorado Rockies에서  갤러리 ▶ https://ykcho.ivyro.net/Gallery/002.html  제목 2024. 4. 14.
세월이 슬픈 것은 세월이 슬픈 것은 趙司翼 피카소 덧칠 같은 군상(群像)들이 에워싼 스트라스부르크 낯선 거리에서 감기듯 휘젓는 센강 흰 바람이 새들처럼 날아간다 누군가의 미소 자욱한 거리에서 저무는 하루가 저녁으로 깊어 가는데 곤하게 슬픈 인생들 틈에서 내가 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차라리 말하자 어스름을 지금 시간이 밤 일곱 시, 네온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나 외로워서 허둥대는 쓸쓸한 거리에는 어느 해 학창 시절처럼 그 세월 이야기들이 눈가를 젖어 흐르고 이루지 못한 꿈들만 양손 가득 휘청휘청 몸을 짓누르는데 인생 무거워진다는 것이 이렇게도 슬픈 세월이 된다는 것을 (프랑스 Strasbourg에서) 제목 2024.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