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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4) : 길 위의 날60

밀레의 만종(The Angelus) 밀레의 만종 (The Angelus) 趙司翼 들판 희미하게 노을 짙어 지면서 고개 숙인 농부의 삼종기도가 숙연하다 밀레는 어찌 이 좁은 공간에 광활한 평원을 끌어 들일 수 있었을까 명상과 기도 소리가 들리는 듯 무한이 숨어 있는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면서 농부의 마음을 불변의 리듬으로 기도 하는 짧은 휴식, 한 순간에 집중할 뿐 삼종기도(The Angelus), 숭고함도 감정 두드러지게 말하지 않고 그림 뒤에서 침묵하는 성스러운 고요만 있다 하늘 어둡게 타오르는 동안 붐비듯 물든 노을이 사라지고 슬픈 생각만 집단처럼 쌓이는데 적막을 머뭇머뭇 캔버스는 고요만 외롭게 연기처럼 자욱하다 (2018.12.21 - 오르세 미술관에서) 삼종기도 : http://namu.wiki/w/%EC%82%BC%EC%A2%85%.. 2024. 3. 23.
아침이슬 아침이슬趙司翼서리가 엉킨 거미줄에 맺힌 이슬진주알 영롱한 조화를 하느님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먼 별 우르르 듯 넋을 놓고 보는 동안 빗줄기처럼 아침 햇살 쏟아지고 하나씩 둘 씩 억새 말라버린 풀숲으로 숨어드는 이슬........... 뭐든 간에 간절함은 매 순간이 그러하듯 그 짧은 운명을 아쉬워하며 얼떨결에 내뱉는 한마디 표현조차 입천장에 달라붙어 굳어 든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른 낙엽 사이를 옥처럼 맑은 하늘 지금이야 말로 바람아 불어라 구름처럼 일며 짓누르는 아쉬움  가벼워지는 마음이 되자 길 근처 서리 핀 갈꽃 냄새가 맑다  제목 2023. 12. 9.
민들레 민들레 趙司翼 쑥향 우거진 풀밭길을 민들레가 울고 있다 자갈돌 모래밭에 몸을 비비며 쓰러질 듯 보여도 스스로 생명의 비약을 견고히 탁월한 본질의 영역에서 내가 보기엔 들에 핀 꽃 중의 꽃이다 타다만 먼지처럼 늦가을 굳어가는데 꽃 지고 잎 마른 민들레를 떠나오면서 그런 이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별의 눈물을 말하지 말자 옷자락이 타는듯 한 석양을 바라보면서 또 눈물은 어디서 오는지 신음하듯 들리는데 흐느끼는 소리 골골이 도랑물 소리인가 했더니 한 밤중을 민들레 홀씨되어 새벽 너머 어디론가 날아가는 소리였다 제목 2023. 11. 5.
가을이면 슬픈 것들로 하여 가을이면 슬픈 것들로 하여 趙司翼 저 타는 황혼 쓸쓸해서 허리춤을 둘러보니 문득 보게 되는 바람 속을 들국화 꽃이 울고 있다 해질 무렵 들려오는 산사의 종소리에 길을 잃고 서성거리는 내 모습이 슬픈 순간 혼자만의 울음으로 너무 많은 추억을 불 싸지르고 싶다 내 이러한 원인의 중심에 가슴새가 울부짖는 피의 절규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은 온통 침묵보다 더 한 것들로 허허롭고 풀밭을 홀로 풀 꽃에도 이별은 있었으니 바람결에 얼굴이 스칠 때마다 마음만 병들고 외롭고 쓸쓸하고 빈 들을 홀로 서서 참으로 흔들리는 갈잎 소리뿐 훌쩍 거리며 시들어 가는 허수아비 벌판을 아스라이 별 뜬 밤만 눈에 들어온다 제목 2023. 10. 16.
가을이 오면 가을이면 趙司翼 이슬 촉촉한 밤을 웅크린 수탉이 몸을 터는 동안 새벽을 뿌리치며 투명한 빛줄기가 열린 문틈으로 기어 드는 햇살 모습에서 이릴 때 고향집 옛 생각들이 목화꽃 익어 가는 너른 벌판처럼 쓸쓸해 온다 그 숱한 나날 개울가를 여동생과 징검사리 새우 잡던 기억이 머뭇거리고 부뚜막서 밀 빵 굽던 할머니가 희끗희끗 생각이 난다 어느새 나뭇잎이 불긋거리고 바람벽을 갈대가 부르짖는 이러한 날 아득히 기억도 기억이지만 첩첩한 세월 거느리느라 노을 길 산등성 산마루를 떠돌다가 홀로 그렇게 그런 가을 외로이 달 푸른 밤을 그리운 것들만 오고 가는 이러한 가을로 외롭고 쓸쓸할 것만 같다 제목 2023. 9. 25.
분카 롯폰기 서점에서 분카 롯폰기 서점에서 趙司翼 존 아르기로풀로스18세기 비잔틴 철학자 르네상스 철학을 선물하기로 하고 모퉁이 서점에서 나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온갖 기대를 자극하는 책표지 화려한 입 놀림 널브러진 진열대가 사방으로 삐~잉 둘러앉아 대감댁 잘 차려진 궁중전골에 보리굴비 한 상처럼 언제 와도 서점은 그러하다 마음 설레는 흥분된 까닭이 너무 크다 보니 결과에 대한 한탄을 되풀이하는 습관 때문이었는지 오늘도 그리될까 봐! 그래서인지 이마를 두드리듯 쾅! 하고, 전두엽이 미친 듯이 날뛴다 멍하니, 이게 뭐지? 마법에 끌리듯 집어 든 한 권의 책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아보자'.......!! 결코 서점을 찾은 대답은 아니었으나 은연중 내 안의 비옥한 집착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나를 모르겠다 팔자에도 없는 탐욕을 날.. 2023. 9. 22.
그저 바라만 보았다 그저 바라만 보았다 趙司翼 바람이 숨 고르기를 하는 동안 해안가 수평선 멀리 모래 풍이 걸어온다 높은 들창 가에 하늘이 찰락거리고 몸을 웅크려봐도 종달새에겐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다 절박한 나의 손짓이라고 해봐야 새의 깃털처럼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악마의 행동이라 말하기엔 이 모든 것들이 엘니뇨로 몸살을 통곡하는 지구의 절박한 경고의 말을 외면한 탓이다 보면서, 보고 있노라니 오후의 햇살도 잠시 그림자 깊어지면서 비바람 울음도 희미해지고 격렬하던 나무들 몸짓 모두 주저앉아 울부짖는 통곡뿐이다 정체불명의 으르렁 소리는 멀리 있는 몇몇 집들이 사라지는 소리였다 널브러진 거리는 인간 울음이 움푹 파인 자연은 지구 울음이 편집등록 . 신유라 제목 2023. 9. 21.
프로방스 작은 마을 프로방스 작은 마을 趙司翼 볕에 글린 오렌지색 낡은 지붕 작은 마을 바로크식 대성당의 저물녘 비록 사이프러스 길 혼자일지라도 피렌체로 가는 노을 붉게 물든 지중해를 노래하고 싶다 정어리 그릴에서 핀 재색 연기가 바닥돌 네모난 길을 지나 몽블랑으로 간다 깊은 밤 하늘엔 별빛 흐르고 숨이 멎을 듯한 풍경 잎이 그윽한 종려나무 가지들이 도란거리는 자장가처럼 너른 들판을 베고 누워 가끔 생각케 되는 미래가 엇갈리는 초조 나는 그것을 지금 생각하고 싶지 않다 도처에서 이어지는 풀벌레 소리가 곱다 https://poem-poet.tistory.com/594 Provence . 프로방스 poem-poet.tistory.com 제목 2023. 8. 21.
때로는 외로움도 친구가 된다 때로는 외로움도 친구가 된다 趙司翼 찾아 나선 길도 아닌데 초져녁 별이 뜨고 뻐꾹새 우는 밤을 둘러보다가 달맞이꽃을 보았다 너도 쓸쓸한데 외롭다고 기댈 수도 없고 시간을 목침 삼아 피곤한 밤을 지우며 소리 없이 여는 새벽 외롭다고, 그리 말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과 밤을 이야기하면서 친구였다고 말하면 초조를 두둔한 역설처럼 그리 될까 봐 공연히 눈물이 흐르고 수채화 모습을 하고 비 내리는 아침 울새와 비비새가 슬피 운다는 것은 내 생각뿐이고 간 밤 무사했다고 노래 부르는지도, 비 젖은 풀밭 저편 흰 백합꽃 유리알처럼 그러하듯 때로는 외로움도 친구가 된다 2018.8월, 하코다데에서 제목 2023. 7. 17.
새벽을 여는 사람들 새벽을 여는 사람들 趙司翼 도시의 잠든 밤 찰칵 소리를 내며 하나 둘 불빛들이 창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비질소리뿐인 새벽 길거리엔 그 흔한 밝은 등하나 내걸리지 않고 뒤로 뒤로 자기 발소리를 밀어내면서 간밤 이야기를 닦는 사람들 전복된 첨탑의 파편처럼 사거리에서 뿔뿔이 또 다른 이야기로 나뉘는 발길 사이 앞날을 가슴 깊이 문신으로 신호 대기 중 마주치는 눈동자 그들 말로는 정직한 빈곤이라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제목 2023. 7. 10.
은둔자의 밤 시카고 은둔자의 밤 시카고 趙司翼 시끌벅적 시끄러운 골드 코스트 극장 모서리 발광하는 오색불 나이트클럽 밖을 재즈 콤보 아픔을 달래는 트럼펫 연주소리가 그림자처럼 길가에 뿌려지고 차량 행렬 불빛이 슬픈 광대 어깨를 어루만지며 시카고 스카이라인 또한 불빛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귀가 펄럭이고 뼛속까지 시려도 떠들썩 흥정 속에 만신창이가 된 불나방 윙윙대는 시카고의 밤 새벽 무렵까지 그들에겐 숭고한 밤이었고 이론적으로는 나에게도 나방이 득실거리는 빛의 고통이었고 어둡고 차가운 그림자 속에서 내 구체적인 사연을 가슴 깊이 묻어 두고 창녀와 작별을 키스 했다 제목 2023. 6. 22.
시칠리아 마자라 델 발로 시칠리아 마자라 델 발로 . Sicily Mazara del Vallo 趙司翼 불빛 소음, 그 걷잡을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별밤은 오지 않았지만 새들 지저귀는 오렌지 밭 벌 나비 윙윙소리에 눈꺼풀 흔들면서 햇살 차오르는 발코니에서 보는 지중해 푸른 아침, 나는 그곳에 와 있다 변화에 밀려 고정된 경이(驚異)는 아니지만 집집마다 따뜻한 눈동자가 반딧불이, 불빛처럼 매달린 인정 넘치는 '마자라 델 발로'에 와 있다 대열을 바꿔가면서 구름 몇 개가 연무처럼 하늘 높이 흘러가고 옆집 젊은 엄마가 지중해 식 밀크티와 목가적(牧歌的) 아침을 놓고 간다 제목 2023.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