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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文學 . 2022년 . 2023년89

비 내리는 밤을 홀로 있는 여자 비 내리는 밤을 홀로 있는 여자 趙司翼 귀갓길 기즈가와(木津川) 역 건널목 소란에 취한 가로등 불빛 속을 뒤섞인 수다는 우르르 걷고 뛰는데 건널목을 한 여자가 홀로 서있다 가려진 우산 속을 흐느끼는 걷어 올린 옷소매가 빗 속을 떨고 있다 파란불 깜박이는 건널목을 울며 걷는 여자 며칠 전 이곳서 짧은 생을, 슬픔만 놓고 떠난 남자의 아내 두 아이의 젊은 엄마가 울고 있었다 내 조국 지난 아픔 함께 토닥이며 술잔 기울이던 기억이 마음 아프지만 내 어찌, 그런 때문만으로 나도 슬프다고, 위로의 말 전할 수 없었다 여자가 머물다 간 자리엔 희디 흰 국화꽃만 빗길에 울고 있다 편집등록 성우혁 BGM - 伍代夏子(忍ぶ雨) 제목 제목 2022. 10. 11.
브라이튼의 봄 브라이튼의 봄 단 한 번도 고맙다고, 말한 적 없는데 나 타국이듯, 너도 타국인데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고향에서의 기억을 깨우는 씨 장다리가 정원 텃밭서 노랗게 핀 꽃을 보면서 어머니 손질로 빨랫줄에 내걸린 풀 먹인 옥양목을 방패 삼아 잠자리 잡던 때가 그립다 때로는 어렸을 적, 봄 어느 날 아버지 목마를 탔던 창경궁 벚꽃놀이 행복한 추억도 조선왕조 짓밟힌 흔적인 줄 알았을 적엔 왜놈들을 저주하며 가슴 아팠던, 봄이면 송곳날처럼 뼈저린 추억을 던져주기도 한다 기억이 교차하는 추억 속에 피어 나는 고향서 봐도 눈물 날 씨 장다리가 노란 꽃으로 정원 텃밭에 피어 있는 것을 보면서 조상님 혼이 어린 종자들과의 세월 고맙다고 , 말하면서 뜨건 감정이 어릴 때 눈물처럼 솟구친다 2022.04.02 - Brigh.. 2022. 10. 9.
내 온갖 기억을 이별로 쓰는 밤 내 온갖 기억을 이별로 쓰는 밤 趙司翼 잦아지는 고통으로 신의 영역을 배회하는 밤이면 핏물 붉게 흐르는 강을 마주칠 때마다 의지만으로 견딜 수 없어 일기 한 장을 뜯어보면 그때만 해도 사실을 적시하지도 못한 채 서슬 퍼런 시대의 물결에 치어 뚝뚝 피 흘리며 텅 비어 있는 원고지를 보게 된다 육칠십 년대 원고의 자유를 억압받던 때라서 당시의 이런 기억 모두 죽어야만 오는 새벽 오늘 밤엔 지난 일들이 별보다 높아 있고 잊고 있었던 기억이 이렇게까지 가슴 후빌 줄이야 그 어떤 말보다 꺼져가는 숨소리만 기억되는 어둠을 웅크린 친구 생각이 가슴 아프다 독재를 타도하던 시대의 지성들이 죽음의 물결로 육칠십 년대를 흘렀었는데 바이러스가 요즘을 지배한 세상에서 브라이튼의 밤을 또 한 인생이 빗물처럼 흘러간다 가슴 떨리.. 2022. 10. 7.
외포리 선착장 외포리 선착장 趙司翼 주문도(注文島) 가는 마지막 배가 출항하고 여운이 남긴 뱃고동 소리 쓸쓸한 그렇게 간 밤은 그리움만 놓고 떠났다 새벽을 걷는 해안 길 멀리 크고 작은 바닷바람 물결치는 풀밭엔 민들레와 카우 슬립 앵초들이 꽃을 피우고 밤샘 인생을 품팔이 한 고깃배들이 먼동을 싣고 외포 선착장에 닻을 내린다 멀리로 잡힐 듯한 석모도는 낙가산을 산마루로, 철 모를 때 어머니 뒤를 따라 걷던 추억이 아련하다 편집등록 . 신유라 BGM - 인생길 가다 보면 2022. 10. 6.
자연은 계절에게 묻지 않는다 자연은 계절에게 묻지 않는다 趙司翼 빛이 없는 자의 얼굴은 결코 별이 되지 못한다 빈곤도 철 지난 빈곤은 외면인 세상에 그대 인생 깊은 그늘 차디찬 골목서 살 트는 찬바람에 넋을 잃고 웅크린 삶을 생각한 적 있는지! 그대 태어날 때 본래 약속은 세상 더불어 공평하고 숭고한 인생을 말함이지 않았던가 이 험한 세상 견뎌내기란 항상 그대 생각 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고 진실만을 믿고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는데 독수리 까마귀를 알기 위해 복종할 때만큼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아는 시간이듯 그대 또한 분별 알기 위한 진실된 안목을 닫고 살진 말아야지 자연은 계절에게 묻지 않고 어떻게 자랄 것인지를! 이 나무는 저 나무에게 묻지 않는다 들꽃 홀로 필 때 오랜 노동 있었고 빛나는 별은 어느 한 날 논밭.. 2022. 10. 4.
지친 방황을 깨우고 지친 방황을 깨우고 趙司翼 오후의 루비색 햇살이 거리에 앉을 때 허드슨 강을 허리 곁에 두고 사이프러스 줄지어 선 둑길 걸으며 지친 방황을 노래하고 있을 줄을 나도 몰랐다 물 위를 떠 가는 여객선 위로 갈색 띤 안개 자욱히 흐르는 것은 가을이 와 있다는 것을 말함이다 노을이 어둠 안으로 사라져 갈 때 알게 모르게 참고 견딘 이별로 아팠던 모든 흔적과 화해를 해야겠다 외롭고 쓸쓸해서 가슴 아팠던 어느 해 가을처럼 또다시 그 가을은 말아야지, 강바람이 나의 아픈 등을 만지작거린다 2022.09.30 - Upstate New York에서 편집등록 성우혁 BGM - Paul Mauriat (Le Ruisseau De Mon Enfance) 2022. 10. 4.
노천카페에서 노천카페에서 趙司翼 이렇게까지 내가 가난한 사람인 줄 몰랐다 가을로 든 거리의 노천카페에서 갈색 유리창에 뜬 내 모습이 세상과 등 돌린 세월의 난맥상이다 희열보다 실망만을 챙기면서 돌이켜 보면 쓸모 있게 걸어온 길은 겨우 느끼게 되는 바람에도 허공을 나부끼는 나팔꽃 마른 줄기, 그러함 뿐이다 나만의 묵상할 틈도 없이 망각 선상을 정서 휘청이는 줄 모르고 가혹하기만 했던 것을 알기에 남은 생의 숭고함을 갖기 위해서라도 세상과 직면함에 있어서 얼굴 맞대고 논리적 솔루션으로 나 자신을 절도 있게 유지해야겠다 2022. 09. 30 보스톤에서 편집등록 신유라 BGM - PaulMauriat(시인과나) 2022. 10. 2.
날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담이 무너진 자락으로 지는 나뭇잎 쓸쓸한, 미래를 말하기엔 내리막 인생 길에서 좁아진 기회의 울타리를 바둥대며 갈변된 몰골로 지쳐있는 노대(路臺)의 과일처럼 불현듯 외로워오는 노후를 보게 되면 누굴 붙들고 초조한 불안을 하소연하고 싶다 삶의 초석으로 디뎌왔던 순발력마저 차 떠난 뒤끝을 허둥대듯 둔해만 가는 거역하고픈 운명의 한계는 코앞인데 빌어먹을, 연륜마저 초라해지고 가을 곁을 외로워하고 있을지도! 영험한 점집을 찾아 적선이라도 하고 싶다 2022.09.17 - Brighton, Boston 편집등록 (신유라) 2022. 9. 22.
그라이안 알프스 그라이안 알프스 . Graian Alps 趙司翼 혼불처럼 피어오르는 신의 영역이다 밤 깊어 텅 빈 하늘 그라이안 알프스 눈폭풍은 울어대고 날리는 영혼 속에 떠 가 듯 천지의 경계가 차마 두려워 나는 눈을 감는다 혹한 참혹히 눈태풍은 날리는데 생물로 이름 지어진 숨통 모두 얼어버린 알프스 침묵 속에 이 어찌, 신과의 연이 아니고서야 저 숲은 의연할 수가 있는지 오 그라이안 알프스여! 나날이 패인 상처를 절망이라고만 말하지 말자 밤이면 푸른 보석이 내려 꽂히고 낮이면 사파이어가 희디희게 반짝인다 2018.10.18 편집등록 정민재 2022. 8. 29.
서울의 밤 서울의 밤 趙司翼 악취가 포만의 물결로 점령한 골목을 신음하는 운명 앞에 끝내 좌절하고 마는 자본, 그 모순이 갖는 처한 한계에서 귀퉁을 돌 때마다 폐지 한 조각으로 삶이 좌지우지되는 그들 운명은 가진 자들 들러리일 뿐 별마저 밤을 떨며 날개 절뚝이고 빈 골목 허기진 밤은 비마저 내리는데 가난을 운명으로 침묵하는 달팽이처럼 느리게 흐르는 옥인동의 밤 어두운 창문 밖을 솟아오른 것은 이 무슨 삽자가 가 서울의 밤을 점령하고 절름 절름 타락한 밤이 무너져간다 편집등록 성우혁 BGM - 서울탱고 2022. 8. 26.
너를 보내며 너를 보내며 趙司翼 옷깃 사이를 품어 살던 스프링필드 여름 내 생의 한 자락을 베어 물고 불모의 들판을 가로질러 록키산맥 어느 고개로 작별의 말 없이 또 한 계절 캔버스를 가을 화가의 붓놀림에 내어주고 가만가만 그렇게 떠났다 훗날 어느 한순간 문지방 넘나 드는 찬바람 잦아질 때엔 그립겠지만, 또한 반복되는 이별이기에 가을 어느 한 자락 베어 물고 부대끼며 몹시 더웠었노라고, 기억 모두 무심히 그리하려 한다 2021.09.10 - Springfield, Massachusetts에서 편집등록 신유라 BGM - Tu Ne Sais Pas Aimor 2022. 8. 24.
살면서, 사는 날까지 살면서, 사는 날까지 趙司翼 나의 어제는 계곡물 낙수로 질 때 무지개를 그린 물안개였고 나의 내일은 자작나무 숲에 핀 안개일 것이고 나의 오늘은 하늘을 떠가는 구름이다 나의 어제는 창공을 나는 파랑새였고 나의 내일은 사이프러스 숲을 노니는 바람일 것이고 나의 오늘은 멜로디가 있는 풍금이다 태양이 자연을 향하듯이 나의 시선을 하늘로 두고 투명한 바람처럼 향기로 나부끼며 살면서, 사는 날까지 2022. 04.05 - 비 개인 오후 마운트 그레이록(Mount Greylock)은 집에서 봐도 등고선이 확연한 관계로 아름다운데 비 개인 날이면 옥빛 같기도 하고 한 폭의 수채화처럼 파스텔톤에서 뿜어 내는 평안함이 도시인들에게 모든 잡음을 해소시켜 준다 2022.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