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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畵集(3) : 바람이 울고간114

자화상 自畵像 자화상 自畵像 趙司翼 상처 얼룩진 걸음 이제라도 끊어 내야겠다 내 부모가 내 걸어준 씨 등불 하나로 동절(冬節), 녹아 흐르던 밤 어둠을 첫출발로 희끗거린 반백의 머리 비척이며 황혼의 강 건널 때 어느 변곡(變曲) 선상에서 고인 눈물 옷깃 여미는 쓰라림이 아프다 이것이 전부라면, 오! 이것이 전부였다면 이제라도 인생에 푸른 비가 내려야 한다 넋을 놓고 굳은 사지를 매 만지는 어리석음은 말아야지 삶의 운율이 쓰러지고 이내 흐느끼는 소리가 비애의 폭풍처럼 매몰되어 가는 고뇌의 밤 견디기 위한 억센 생명은 차마 안쓰러워 내가 견딜 수 있게 오! 내 남은 의지로 견딜 수 있게 이제라도 손을 내밀자 오직 살려는 몸부림 속에 참혹한 내일을 분간 못한다면 너무 비참할 것 같다 빛바랜 감정은 차마 서러워 내 인생 항로.. 2022. 8. 23.
나 언젠가는 나 언젠가는 趙司翼 이 작고 외로운 행성에서 별자리가 알려주는 곳 거기에 이르렀을 때 모든 잘못과 화해로 영혼을 거둘 수 있게 음유시인이 막 내리면 병든 피 묻은 풀밭 위로 세상의 깃발 흔들릴 때 그 어떤 의식도 향수 뿌리지 말고 이 무기력한 지구에서 만남과 이별로 눈믈 짓는 그런 혼돈에서 그런 모순에서 지독한 두려움 없이 영원을 나는 파랑새가 되리 제목 2022. 8. 19.
미타케 외로운 밤 미타케 외로운 밤 趙司翼 어두워가는 적갈색 황혼 속에 초저녁 별이 뜨고 혼자인 세월 너무 길어 습관처럼 외로웠던 삼나무 숲을 수리부엉이 울며 새운 밤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새벽하늘 넘실댄다 무심이라도 추억 밟기를 비롯하면 결 결이 얼룩 범벅으로 나부끼기만 하는 자고 날 때마다 낡은 기억은 가고 투쟁이었을 뿐 화해는 없었던, 내게 가한 아물지 않은 상처가 별 밤 흐르는 눈물조차 버려둔 채로 백향목 곁에서 늙어가는 밤을 부둥켜 앉고 미타케산 백목향 숲에서 (白木香 茂る 三岳山) 편집등록 신유라 제목 2022. 8. 17.
우울한 사랑 우울한 사랑 늦가을 그날이 오면 의례히 앓는, 무엇인지 잊기 위한 숨통을 조이면서까지 참아내느니 죽음보다 더한 무의식 있다면 그리해서라도 잊어야기에 겨울 나뭇가지를 떨다 간 미지막 한 잎 나뭇잎처럼 어디로든 구르다 내지를 비명소리를 듣는다 해도 오래전 일이라며 쉬~이 쉬~이 살아 내겠는데 그럴수록 심장을 뛰는 추억은 역으로 가는 2차선 도로에 선 가로수 길을 지나 건널목 차단봉 앞에 다다랐을 때 뚜우~웅 기적을 울리며 들어설 열차시간은 가까워 오고 그녀와 헤어질 시간 또한 임박한 논산역에서 작별의 말 대신 기대듯 어깨를 스치며 마주 잡은 손을 놓았을 때 못내 불안한, 이렇듯 잊히지 않는 이별의 날이 되고 말았다 잊지 못해 두렵고 잊힐까 봐 아쉬운 추억은 이 밤 어느 별 한 자락을 빛으로 울고 있을지 趙司.. 2022. 8. 15.
시월, 산토리니 Santorini 시월, 산토리니 Santorini 趙司翼 전설 속 이야기처럼 사랑이 들끓는 에게해 푸른 연금술에 덜미가 잡혀 죽은 자의 시간을 걷는 줄도 모르고 바다로 기어드는 지중해 하늘 아래 '아스프로니시'섬을 나는 갈매기 날갯짓 고단한 질렁거리는 나귀 방울을 보면서 마부의 젖은 눈동자를 만지작거리는 여행자 생각은 칼데라에 매몰되고 에게해를 떠도는 유령처럼 신화 속 전설에서 고대 그리스를 뒤척인다 머물고 간 시인의 입김처럼 드러나는 주황빛 노을은 골목을 기어드는데 별을 노래하는 유럽 여자의 통기타 소리 쓸쓸한 대서양을 횡단하는 자수정 달빛 속에 표정 없이 깊어가는 석고풍 산토리니의 밤 Aspronisi(아프로니시) 섬은 산토리니 칼데라 안에 있는 무인도로서 기원전 2000년에 대규모 미노아 화산 폭발로 형성되었다 그.. 2022. 8. 15.
苦惱의 詩 苦惱의 詩 趙司翼 이 괴로운 일상이 나를 지치게 하고 기댈 곳 없어 떠돌기만을 해야 하는 이러한 고통과 갈망 안에서 더 이상 견딜 이유마저 희미해지고 살기 위한 염원, 그 날개는 부러진 채로 단 하루도 뉘일 곳 없어 떠도느라 내 아버지 부고를 담은 국제 전보를 받지 못했다 센강엔 안개 자욱이 흐르는데 멀리 성당은 빌딩 숲이 지운 것이어서 마음을 담은 기도문조차 천연 분수처럼 바람에 날려버리고 유학 길에 맹세했던 약속마저 결국 이 모든 것을 부서진 채 남겨두고 아버지 기일만을 기억하려는 마음이 아프다 편집등록 성우혁 몰도바 2022. 8. 14.
늦가을 화진포(花津浦) 늦가을 화진포 趙司翼 바다가 숨을 몰아 쉴 때마다 거친 파도의 요동 속에 벌집 드나들듯 고깃배 윙윙 거리는 화진포 뼈마디를 갉아내는 숨비소리 처참히 주저앉고마는 늙은 어부를 보면서 고개 돌린 내 눈가가 적시어온다 둥지 떠난 네 자녀를 애 태이 기다리다 주름 깊어졌다는, 그처럼 깊이 패인 파도가 밀리는 항구에서 "나는 끝내 바다에서 학살되고 말 인생이여!"라고, 피보다 진한 눈물 견디고 계시는! 홀로인 당신 앞을 나는 차마 떠날 수가 없습니다 질근질근 씹어 견딘 세월 소리 없이 울부짖는 통곡의 절규였을 것이다 죽음 짓누르는 공포 있다면 거친 바람에 어부의 하루가 위태위태 흔들린다 남은 세월 훌훌 털릴지도 모르고 2011년 가을이 질무렵 화진포 해안가에서 86세 어부를 만났다 편집등록 성우혁 제목 2022. 8. 12.
뇌우 雷雨 뇌우 雷雨 연기에 젖은 송판장처럼 어두워 오는 하늘 없는 죄도 손 모으게 할 것 같은 폭풍을 목전에서 고요만이 음산한 대류의 정체 속에 이내 하늘이 우르르 어긋나기 시작한다 커튼을 젖히고 창밖을 보았다 강수 입자 팽창 속에 번개 번뜩이는 거리뿐 미루나무를 기대 살던 꺾인 버들 가지를 붙들고 새들의 아우성으로 들끓는 하늘 아래 다다닥 떨어지는 우박 덩어리가 붉은 피 흘리며 우두둑 툭툭 질 때마다 대지마저 숨퉁이 끊기며 날 선 비명을 내뱉는다 맹렬했던 가뭄 머물던 곳엔 쏟아지는 폭우 속에 마른 침대가 드러나고 개구리 목구멍이 삐걱 거리는 소리 요란한데 낙뢰 번뜩이며 하늘이 무너질 때마다 베토벤 '운명교향곡'에 없는 천둥소리가 로렌초 기베르티 '천국의 문'에 없는 낙뢰 번뜩이는 趙司翼 2022. 8. 8.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On Michelangelo's Hill 趙司翼 울프처럼 우짖는 도시 소리 피해 흐르는 피렌체 아르노 강 검은 물결엔 암담했던 청춘 때 그림자 일렁이고 칠팔십 년대 붓통에 꿈을 담아 거리를 떠 돌던 지난 추억으로 하여 돌이켜 생각하니 과육처럼 갈변된 눈물이 흐른다 양귀비 점액을 뿌려 댄 듯 환상의 밤 두오모 성당 지붕 위엔 갈색 구름이 걸렸다 와인에 취한 미켈란젤로 광장 칸초네 선율이 휘어 돌고 나 홀로, 나처럼 외로운 사람은 또 누군가의 외로운 사람에 기대어 중세도시 마법의 숲을 쓸쓸이 제목 2022. 8. 7.
몽산포 해당화 몽산포 해당화 趙司翼 빗장처럼 굳게 닫힌 하늘이 열리고 먼지바람 물결로 쌓인 제방 지열(地熱) 투성 바닷가 모래언덕 음표처럼 빗방울이 내린다 기진맥진 해안선을 얼싸안고 토닥토닥 깨워 흔든 빗방울 소리 점차 거세지는 빗줄기는 짐승처럼 우짖는데 파도를 퍼 나르던 해풍 그 거친 손길이 쌓아 올린 해안가 사구(砂丘) 둑 열기 이글거리는 몽산포 모래 언덕에 미로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를 붙들고 거친 숨결로 피어 오른 해당화가 가시 돋친 가지마다 분홍 깃발을 내걸었다 해당화 꽃말을 젖은 눈동자로 바라보면서 어느 청춘이 남기고 간 온화한 미소가 꽃으로 피었는지 편집등록 신유라 제목 2022. 8. 6.
그레이트 베이슨 . Great Basin 그레이트 베이슨 . Great Basin 趙司翼 누가 이렇게 푸른 초원이 둥지를 떠나게 하였는가 내 기억을 흐르는 추억이 사라진 자리는 박제처럼 표백으로 굳어진 가문비나무와 말라 엉킨 풀더미 쓸쓸한 갈색 초원 붉은 모래에 반쯤 묻힌 밀짚모자에게 어디로 갔느냐고, 주인의 안부도 묻지 않고 언제 돌아온다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풍경 모두 외로움만 더욱 커지는 빈 목장 어차피 인생은 고독한 수행을 동반한다지만 오늘 하루가 휴면으로 가는 붉은 대지는 달빛이 캐스팅한 바람의 그림자만 간간할 뿐 어두운데, 여러 목장이 떠나버린 빈 들판 죽은 나무 마른 가지는 거미줄만이 희끗거리고 목장을 떠난 친구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적갈색 모래 먼지 피어오르는 지평 멀리 열리는 하루 듬성듬성 농장 울타리는 녹이 슬고 철망에 .. 2022. 8. 4.
무아지경 無我之境 무아지경 無我之境 몇 년 전 어느 별이 빛나는 밤, 나는 우뚝 솟은 요세미티 화강암 절벽 가장자리에 있었고, 북부 캘리포니아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다 아!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 호흡할 때마다 놀라운 해방감이다 호박색 눈을 가진 새가 내 옆에 앉아 있었고 영혼과 또한 영혼이 별빛과 함께 광활한 밤하늘이 머리 위에서 춤을 춘다 나무 사이로 은빛 손가락에 와닿는 달빛 누군가의 얼굴이 마치 그림처럼 떠오른다 완벽한 그림, 지금도 생생다 바람의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마치 매혹적인 파도처럼 느껴진다 계곡을 가로질러 유유히 흐른다 나는 평화를 호흡하고 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Yosemite Rapture One starry night, years ago, I was near the edge of a .. 2022. 8.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