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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번역시

신좌섭 . 네 이름을 지운다

by 조사익시문학(運營者) 2024. 5. 2.

 

 

신좌섭  . 네 이름을 지운다

몇 번을 망설이다

민원실 들어서 신고서를 쓴다
볼펜이 니오지 않는다
오래 끌어온 탓에 벌금 삼만 원
얼굴이 하얀
창구아가씨가 나를 들여다본다
돌아올 수 있다면
돈이 얼마라도 버티겠건만
십구 년 전 너 태어날 때
이름 석자 눌러쓰던
이 손으로 네 이름을 지운다
용서해 다오
휘청거리며 돌아오는 길
멀리서 아득히 랩노래가 달려온다
이름마저 지워진
네가 외롭게 랩을 부르는구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좌섭 교수가  
2024년 3월 30일 저녁 6시쯤 65세로 사망했다 

 


신 교수는 <금강>,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시로 
우리 현대문학의 큰 획을 그은 신동엽 시인의 아들이다. 
하지만 신 교수가 늦은 나이에 시 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아니었다. 
지난 2014년 아들이 원인 모를 심정지로 사망하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신 교수는 시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아들을 추억했다. 
때문에 그의 시에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히 묻어있다. 

 


아들의 죽음은 아버지의 시작이 됐다
아들의 죽음은 아버지의 삶을 바꿨다.
신좌섭 교수는 시를 쓴다는 생각은 사춘기 이후에는 한 적이 없었다.
중학교 때 문예반 선배들과 교지에 싣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입학 이후에는 그것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신동엽)에게 누를 끼칠 수 있기에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이었다.
다만 부여에 있는 아버지 문학관 운영을 위해 시인들과 자주 교류는 있었다.

그러던 2014년 가을, 19살이던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렇게 한 달 반쯤을 보냈는데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끄적이게 됐다.
그런 글들을 정리해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SNS에 올렸는데 친분이 있던 시인이나 평론가들이 코멘트를 달았다.

그렇게 어느 시점이 되니 그동안 쓴 시들을 널리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60여 편을 골라 시집(네 이름을 지운다)을 출판하게 됐다.

 

신좌섭교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jwaseop.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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