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스 프룽가름 목장에서 (At Ursprungalm Ranch)
무참히 흔들린 문밖이 까닭 없는 울부짖음은 아니었다
산맥 둬 구비 돌며 오른 외진 골짝을
굵고 대여섯 된 통목을 엮어 얹힌 다리를 건네고서야 도착한
'우르스 프룽가름'의 평온한 목장 이지만
젖소들과 평생 기거해온 목장지기들이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나이 들어 산을 내려간 후로는 되돌아 오지 못하고
빈 목장으로 스러져 가는 슬픔이 수 곳인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행자로 밤 내내 옹골지게 휴식인 나를,
그게 눈꼴진 전나무 숲이 밤을 흔들며 울어댄 거였다
평생 산에 기거한 사람들,
지옥의 고통이었을지도 모를 늙은 목장지기들에겐
평생 꿈은 하나밖에 없었던 건지,
희망 품은들 모두 이 길이뿐이었고
뼛골 삭아도 견디며 늙은 후에야 목장과의 영원한 이별이 된다고
그렇게 팅 빈 목장들은 저 홀로 슬픈 추억이었다
태초부터 행위로 이어진 새벽바람 희게 솟은 목장길,
길이 멈춘 골짝은 새벽안개 그 끝을 모르겠고
동틀 녘부터 숲 새들은 깃털을 치켜 날며 지저귀고
제철을 노래하는 꽃무리 작달막한 어깨 위로 안개가 흐른다
아랫녘 늙은 목장지기 막사에서
아침을 챙기는 화덕 연기가 피는 것을 생각했으나
메마른 굴뚝엔 인기척 감감한데
수탉들 울음만이 새벽 털이로 분산하고
오래된 까마귀 둥지 근처서
계곡 잔잔히 내리는 물소리만 이른 적막을 흐른다
2015.10.18 (우르스 프룽가름 산장에서)
나 떠나오던 날 친구로부터 건네 받은 알프스며, 목장 이야기까지
원고를 챙겨 와 시집을 다듬던 어느 날
오스트리아발 국제전화에 친구 아내가 울고 있었다
육십여 일 전까지도 산 목장서 당시를 함께였는데
부정맥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이 병원 '잘츠부르크 응급병동'서
여드레째 되던 날 친구의 인생열차는 멈췄다
친구들 스물넷이서 묶어 만든 시집은
끝내 혈맥 뜨거운 손에 쥐어주지 못한 채
이듬해 이월, 몹시도 눈이 내렸는데, 우리는 친구 잠든 묘소에 갔다
모두의 흔적을 새긴 시집 한 권을 묘비 남쪽 방향 그의 곁에 묻었다
이젠 나의 아프고 슬픈 기억에만 존재하는 친구는
그 목장을 앞서간 사람들처럼
끝내 살아서는 목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6.02.23
편집등록 신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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