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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번역시

Life . 윌리엄 블레이크

by 조사익시문학(運營者) 2024. 9. 26.

사랑의 비밀  -  윌리엄 블레이크
그대의 사랑을 말하려 하지 말게나
사랑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니
그것은 산들바람 같아서
말없이 조용할 뿐 보이지도 않다네

하지만 난  고백하고 말했다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했더니
끔찍하다는 듯 두려워하더니
아! 그녀는 떠나고 말았다네

그녀가 떠난 후 얼마 안 되어
여행자인듯한 나그네가 다가오더니
그녀를 데려갔노라고,
한숨만 지을 뿐 말이 없었다네

Love's Secret  by  William Blake
Never seek to tell thy love,
Love that never told can be;
For the gentle wind doth move
Silently, invisibly.


I told my love, I told my love,
I told her all my heart,
Trembling, cold, in ghastly fears.
 Ah! she did depart!

Soon after she was gone from me,
A traveller came by,
Silently, invisibly:
He took her with a sigh.

출생 : 1757년 11월 28일 (Soho, London, England)
사망 : 1827년 8월 12일 사망(69세) .Charing Cross, London,
직업 : 시인 화가

 그는 Felpham에서 보낸 3년을 제외하고는 평생 런던에서 살았고
 그의 독특한 견해 때문에 동시대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지만, 
그의 표현력과 창의성, 그리고 그의 작품 내에서 철학적이고 
 신비로운 기류로 인해 후기 비평가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림과 시는 낭만주의 운동의 일부이자 "전 낭만주의"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William Blake는 1827년 사망 후인 2018년 새로운 묘비를 얻었다.
1827년 윌리엄 블레이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평생 보고 싶었던 그 나라에 가겠다"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년 동안이나 블레이크의 무덤은 그 어떤 표식도 없었으나
2006년 묘지 직원이 기록한 방향 좌표를 사용하여 위치를 추정하였다

Mental Floss 편집자가 쓴 책에 따르면 블레이크를 기리기 위해 
1927년에 기념비가 세워졌지만 비문에 새겨진 내용 때문에

추종자들의 반대로 인하여 오랜 진통을 겪기도 하였다

1927년 Blake의 무덤에서 발견

1964 ~ 196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진 런던 Bunhill Fields 의 묘비

(2009년 10월 18일 처음 이 곳을 방문하였다)

 

윌리암 블레이크 생전의 얼굴모습
1823년 9월, 피츠윌리엄 박물관에서 석고 캐스트로 찍은 생전의 얼굴 마스크

 

William Blake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채 죽었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은 아니더라도 확실히 괴짜로 여겨졌지만, 
 결혼했지만 자유 연애를 지지했고, 
이단 혐의에 가까웠지만 독실한 종교인이었으나
사망 후 시체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에 그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매장한 관계로 시신이 묻힌 곳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러나 1960년 묘지 보수 공사로 돌이 약 20야드 옮겨졌고 
블레이크의 무덤은 다시 한번 표지석이 없어졌으며
2006년이 되어서야 Blake의 매장지의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고
발굴작업을 하던 중 
런던 번힐 필즈(Bunhill Fields)에 있는 블레이크의 무덤은
다른 7개의 시신 밑에 묻혀 있는 공동 무덤으로 밝혀졌다

 

비문에는

"가까이 시인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그의 아내 캐서린 소피아의 유해가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으며 
발견된 돌은 실제로 블레이크의 위치를 ​​표시했으며
"가까운"이란? 그의 아내를 나타낸 것으로 결론지었다

무덤에서 발견된 원장석으로

2018년 런던의 번힐 필드 묘지에 공개되었다

2019년 3월 11일 시인의 무덤을 방문하여 미완성 작품인 ' The Lamb (어린 양)'을 낭송하였다

 

원장석에는..

윌리엄 블레이크가 여기에 잠들다
"시인, 예술가, 예언자"
"나는 당신에게 황금색 실의 끝을 준다.
그것을 공 모양으로 감아라. 그것은 당신을 예루살렘 성벽에 세워진
천국의 문으로 인도할 것이다. "가 새겨져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신비와 공상으로 얽힌 화가로서 시작(詩作)과 회화를 발표했다
블레이크는 초상화나 풍경화처럼 
 단지 자연에 대한 외관을 복사하는 회화를 경멸했다. 
또 일반적으로 보는 무감동한 작품을 부정하여, 
대개 이론을 벗어나서 묵상 중에 상상하는 신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런던의 양말공장 직공의 아들로 교육도 거의 독학으로 이루었다. 
14세 때에 판화가의 제자가 되어 
 고찰(古刹)의 조각이나 중세의 사본을 만들어, 
그것이 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25세 때에 결혼했고, 
회화에서는 유화를 꺼리고 수채화야말로 최고의 표현이라 생각하여 
시화집을 만들어 간행했으며, 
각 페이지마다  그림을 넣어 판각만의 독창적인 색채 인쇄까지 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런던에서 생애를 보냈으며
그 시화집에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 - 1790년)
경험의 노래 - 1794년)등이 있으며, 
성서 속에 신비한 사색을 곁들인 (욥기-1825년)가 유명하다. 

블레이크는 만년에 다시 단테의 신곡에 
100매의 삽화를 기도했으나 미완성으로 그쳤다. 

이 밖에 프레스코라고 자칭한 템페라의 회화가 있는데
 그러나 삽화를 다른 회화와 견줄 만큼 인식시킨 것은 블레이크이다. 

그의 순정적인 시작은 청순함을 나타내지만
 그 밖의 시화에서는 괴이한 신비가 나타나고 
 상식적인 기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선묘(線描)나 음영으로부터 
 생생하게 호소하는 설득력을 나타내어 
 그는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감각에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