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말하면서
趙司翼
너는 내가 기도하던 놈
방패처럼 담을 두르고 문을 지켰던 놈
눈 이 멀까 봐 차라리 사랑을 맡긴 놈
서운해도 굴복해야 하는 소름 끼치게 하는 놈
운명에 묶인 내가 그 무엇이 답답해
문자를 보내던 그 밤이 아직도 기억난다
배신 앞에 혀를 깨물고 조용한 오열
문지방을 붙들고 참기 힘들어
온갖 추태를 지켜본 선술집 주막등처럼
소멸된 내 청춘을 곁에 두고
그림 그려 보니, 시를 써보니
사슬에 갇힌 피조물로만 여겼지
장엄한 날개 불멸(不滅)의 영역일 줄 몰랐다
물은 차고 바람도 싸늘한 밤
원망 길었던 세월 울부짖는 날이면 날마다
문득 오래 앓은 내 모습을 보고서야
외로운 발자국 마디마디 눈물 닦아 내고
밀랍 같은 꿈 달빛에 녹아드는 밤
다행히도 내일이 오면서
오동나무는 가을 나뭇잎이 되고 있다
2016년 9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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