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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편지 . 수필

日記 (조선인 윤씨와 和田貞夫씨)

by 조사익시문학(運營者) 2022. 12. 4.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초라한 방파제를 지나가다
어부의 물질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스치듯, 찰나에서 노인을 보며
'인간이 저토록 고단하게 늙을 수도 있구나'
방해가 될까 싶어 망설이다가 열서너 걸음 하면서 다가갔다

'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귀찮아하는 내색은커녕 눈물 글썽이며 내 손을 꼭 잡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데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윤 씨였다

1942년, 징용당한 지, 반년이 지날 즈음부터
탄광 화약 열기에 눈물은 말라버리고 부모 형제 그리운 밤이면
목 놓아 울고 싶어도 울음마저 잊어버렸단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와 병이 된 마음 털어내셨을지!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 지난달엔 상주가 고향인 정 씨가 향수병에 시름 거리다 하늘로 떠났고
엊그저께 목포가 고향인 최 씨가 육신 병이 깊어져 하늘로 갔습니다
나도 조만간 친구들처럼 하늘로 갈듯 싶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불러주기만을 기도합니다 "

아! 이러한 슬픈 상황을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만 생각하느라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따라 울며 손수건으로 눈물 닦아드리는 것 외엔
윤 씨 노인에겐 그 어떤 표현도 사치요,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1996년 5월 16일, 처음 만났던 윤 씨를 만나기 위해
4개월 여만인 9월 13일 다시 바닷가 방파제를 찾았다
초가을 바닷바람 탓인지 썰렁한 바닷가 풍경일 뿐
윤 씨는 고사하고 그 어떤 인기척도 만날 수 없었다

기대를 하고 간 것은 아니었으나 허전한 걸음 돌리다 말고
처음 방문했을 때 방파제에서 1킬로 남짓 삭당이 있었는데,
그때 보았던 지붕 색이 파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혹여 저길 가면 윤 씨 노인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실 낫 같은 희망을 안고 찾아간 식당에서 '和田貞夫'씨를 처음 만난다
10년 전부터 식당을 운영하면서
조선인들의 생활을 곁에서 봐왔다는 '와다 사다오'씨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7명의 조선인(노인)들이 거주했는데
1996년 8월 2일 윤 씨가 마지막 거주자였다고 한다

윤 씨 노인 떠나던 날도 퍼붓듯
온종일 비가 내렸다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와다 사다오'씨
고마워서 너무 고마워서 노인께 드리려고 메고 온 생필품 배낭을 건네드리고
(완강히 거절하셨으나...)

나 지금껏 단, 몇 번의 방문만으로도 이렇게 힘들고, 서럽고, 분한데
50년이란 세월을 어떻게 견디며 사셨을 조선 노인들

돌아오는 길
아직도 거리에는 울분 토하는 뜨거운 기운이 감돈다
올 때마다 듣게 되는 또 다른 사실로 치가 떨린다

 

편집등록 . 신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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