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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 . 편지 . 수필

편지 (교토에서)

by 조사익시문학(運營者) 2022. 10. 28.

 

 

 

교토에서
유난히 옷깃 스치는 바람소리 무심한 날이면
새벽 숙소 대나무 잎에 내린 이슬 보면서 생각입니다

당신도 혹시!
마당에서 '애디론댁' 산기슭 보다 더더욱 먼 곳에 시선을 두고
무슨 이야기라도 좋을,
내 편지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급한 가슴이 두근거리고

 

여기 와서 한 달 새, 두 번 이별 소식을 들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던 '오시이 미나토'씨가 교통사고로,
꽃가게 옆 찹쌀떡 집 노인께서도 심장발작으로,
두 분께서 하늘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슬펐습니다

내가 그토록 예민해하던 일본인들인데도
동기간처럼 지냈던 분들인데
지난, 비가 내리던 퇴근길에서 서점을 하던 미나토 씨 아내가
교차로에서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서 힘들었던 그 밤이었습니다

 

 

 


이러한 슬픔은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삼나무 숲과 길이 있는 찻집 뒷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짖어 대는 까마귀 소리는,
이곳에서야 길조라고들, 새벽 댓바람부터 법석들인데도
익히 불길한 새로 인식된 탓에 잠마저 설치고

 

출근길 전철 안에서 여러 생각들로 멍하다가도
불현듯 당신께 해야 할 말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해서...

 

낮 동안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는데도
낭만적이고 추억할 만한 얘깃거리는 하나도 없고

서릿발 굵어지기 전에 편지를 써야겠다, 하는 이 순간에도
지금까지 우리 부부 잘 살아왔듯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함께 할 당신한테
왜 이리 듣고 싶은 말만 뇌리를 맴도는지!

주책이라 해도 말 하리다

 


지금까지 당신 삶 중에서 가장 큰 행운이 있다면!
그 행운은 바로 나를 만난 것이라고,
그리 말해주길 바란다면 무리일지 모르겠습니다

 

여태 살아오면서 떨어져 지낸 기간도 많았던 터라
애들한테 치여 살며 많이 힘들었을 당신인데
그럼에도 불구하도 또 듣고 싶은 얘긴, 이리도 많은지..!

 

여보! 요즘 내가 왜 이리 외로움을 많이 타는지 모르겠소
가뜩이나 그러한데,
오늘따라 유별나게 북쪽 하늘 붉은 노을이
전나무 숲으로 가는 오솔길까지 틀어막고
시선 모두 차단해버린 통에 어쩔 수 없이 뒷뜰에서..

비 개인 후라 그런지
잔바람이 지날 때마다 차게 느껴지는 걸 보니
조만간 가을도 떠나려나 보오 
한 잎, 두 잎,
마로니에 낙엽이 지는 숙소 뒷마루에서 생각입니다

 

 

  편집등록    신유라     BGM . 문주란(별이빛나는밤의블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