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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시 . 종합

남궁벽 . 풀

by 조사익시문학(運營者) 2023. 1. 17.

남궁벽 . 풀
풀, 여름 풀
대대목(代代木) 들(野)의 이슬에 젖은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사뿐사뿐 밟는다.
애인(愛人)의 입술에 입 맞추는 마음으로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아 주마 꾸나
그래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레를
돌아다니는 중생(衆生)이다.

그 영원(永遠)의 역로(歷路)에서
닥드려 만날 때에 마치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네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사뿐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사뿐 밟아 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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