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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시 . 종합57

임화 . 자고 새면 임화 . 자고 새면자고 새면 이변((異變)을 꿈꾸면서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행복되려는 마음이 나를 여러 차례주검에서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지만행복도 즐거움도 무사한그날그날 가운데 찾아지지 아니할 때나의 생활은 꽃 진 장미 넝쿨이었다.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마른 가지를 사랑 키엔 더구나 마음이 애 띄어그만 인젠 살려고무사하려던 생각이 믿기 어려워 한이 되어몸과 마음이 상할 자리를비워주는 운명이 애인처럼 그립다.  제목 2023. 4. 28.
김상옥 . 그 네 김상옥 . 그 네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 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양 한마리 호접처럼 앞뒤숲 푸른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어룬님 기두릴까 가벼웁게 내려서서 포란잔 떼어물고 낭자 고쳐 찌른담에 오질앞 다시 여미며 가쁜 숨을 쉬도다 멀리 바라보면 사라질듯 다시 뵈고 휘-날려 오가는양 한마-리 호접처럼 앞뒤숲 푸른버들엔 꾀꼬리도 울어라 김상옥 (1920년) 김상옥(金相沃, 호는 초정 (草汀) 출생 : 1920년 3월 15일 사망 : 2004년 10월 31일 김상옥 경상남도 통영시 함남동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시조(봉선화)를 문장지에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41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낙엽)으로 등단하였다 2004년 10월 30일에 26일 사망한 부인의 유택을 보고온 후 쓰러저 10월 .. 2023. 4. 24.
노천명 . 女心 노천명. 女心 새벽하늘에 긴 강물처럼 종소리 흐르면 으레 기도로 스스로를 잊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한 번의 눈짓, 한 번의 손짓, 한 번의 몸짓에도 후회와 부끄러움이 없는 하루를 살며 하루를 반성할 줄 아는 그런 女性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즐거울 땐 꽃처럼 활짝 웃음으로 보낼 줄 알며 슬플 땐 가장 슬픈 표정으로 울 수 있는 그런 女性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주어진 길에 순종할 줄 알며 경건한 자세로 기도 드릴 줄 아는 그런 여성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제목 2023. 4. 20.
강은교 . 홍련암, 등불 강은교 . 홍련암, 등불 그 문 앞에 서서 등불을 켜고자 등불에 어른거리는 황홀을 잡고자 황홀이 너에게 살며시 다가와 내려 뜨는 눈까풀의 파들 거림을 바라 보고자 살며시 눈 내려감다가 도처에 별을 켜는 모양을 보고자 별에 묻어 있는 깊은 꿈이 웃는 것을 보고자 꿈이 웃고 있다가 부끄럽게 부끄럽게 바다에게 손목을 잡히는 양을 보고자 손목에 잡혀 파도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을 보고자 달려오는 것들이 달려가는 것들임을 보고자 달려가는 그리움 네들이 주욱 푸른 벼랑에 서 있는 걸 보고자 제목 2023. 4. 15.
이은상 . 그리움 이은상. 그리움 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백천길 바다라도 닿이는 곳 있으리라 님그린 이 마음이야 그릴수록 깊으이다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 양 알지 마오 가보면 멀고 멀고 어디 끝이 있으리오 님 그림 저 하늘 같아 그릴수록 머오이다 깊고 먼 그리움을 노래우에 얹노라니 정회는 끝이 없고 곡조는 짜르이다 곡조는 자를지라도 남아 울림 들으소서 제목 2023. 4. 3.
이용악 .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이용악 . 우라지오 가까운 항구에서 삽살개 짖는 소리 눈보라에 얼어붙은 섣달 그믐밤이 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 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 걸어온 길가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 나의 아롱 범은 자옥 자옥을 뉘우칠 줄 모른다. 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 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만지며 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 울 어머닌 서투른 마우 재 말도 들려주셨지. 졸음 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까지 등불이 깜빡 저절로 눈감을 때까지 다시 내게로 헤여드는 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 나는 그 모두를 살뜰히 담았으니 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 기다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 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 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 2023. 3. 31.
정호승 . 그 는 정호승 . 그 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사람이었다 제목 2023. 3. 23.
노천명 . 푸른 오월 노천명 . 푸른 오월 청자(靑瓷) 빛 하늘이 육모정(六角亭)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 연못 창포 잎에, 여인네 맵시 위에 감미로운 첫여름이 흐른다.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에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데 하늘을 본다. 긴 담을 끼고 외딴길을 걸으며 걸으며, 생각이 무지개처럼 핀다. 풀냄새가 물씬 향수보다 좋게 내 코를 스치고 청머루 순이 뻗어 나오던 길섶 어디에선가 한나절 꿩이 울고 나는 활나물, 호납나물, 젓가락나물, 참나물을 찾던 잃어버린 날이 그립지 아니한가,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라도 부르자. 서러운 노래를 부르자. 보리밭 푸른 물결을 헤치며 종달새 모양 내 마음.. 2023. 3. 22.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BGM - Lobo (Stoney) 2023. 3. 6.
유안진 . 안동(安東) 유안진 . 안동(安東) 어제의 햇빛으로 오늘이 익는 여기는 안동 과거로서 현재를 대접하는 곳 서릿발 붓끝이 제 몫을 알아 염치가 법규를 앞서던 곳 옛 진실에 너무 집착하느라 새 진실에는 낭패하기 일쑤긴 하지만 불편한 옛것들도 편하게 섬겨가며 참말로 저마다 제 몫을 하는 곳 눈비도 글 읽듯이 내려오시며 바람도 한 수 읊어 지나가시고 동네 개들 덩달아 댓 귀 받듯 짖는 소리 아직도 안동이라 마지막 자존심 왜 아니겠는가. 2023. 2. 16.
정호승 . 꽃지는 저녁 정호승 . 꽃지는 저녁 꽃이 진다고 아예 다 지나 꽃이 진다고 전화도 없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 없다 지는 꽃의 마음을 아는 이가 꽃이 진다고 저만 외롭나 꽃이 져도 나는 너를 잊은 적이 없다 꽃지는 저녁에는 배도 고파라 2023. 2. 14.
박인환 . 검은 강 박인환 . 검은 강 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最後의 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驛前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合唱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者)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情欲처럼 疲弊(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순한 욕망이 반사되고 농부의 아들은 표정도 없이 爆音과 硝煙(초연)이 가득 찬 生과 死의 경지로 떠난다. 달은 靜寞보다도 더욱 처량하다. 멀리 우리의 시선을 집중한 인간의 피로 이룬 자유의 城砦(성채) 그것은 우리와 같이 퇴각하는 자와는 관련이 없었다. 신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저 달 속에 암담한 검은 강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2023.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