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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시 . 종합57

조병화 . 고독하다는 것은 조병화 . 고독하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 소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보아도 어린 시절의 마당보다 좁은 이 세상 인간의 자리 부질없는 자리 가릴 곳 없는 회오리 들판 아 고독하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요 소망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요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아직도 너를 가지고 있다는 거다 BGM - 고봉산(용두산엘레지) 2022. 11. 14.
김현승 .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BGM - 고대.. 2022. 11. 13.
심훈 . 그날이 오면 심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BGM - 고봉산(그리워서못살겠네) 2022. 11. 10.
임화 . 내 청춘에 바치노라 임화. 내 청춘에 바치노라 그들은 하나도 어디 태생인지 몰랐다. 아무도 서로 묻지 않고, 이야기하려고도 안 했다. 나라와 말과 부모의 다름은 그들의 우정의 한 자랑일 뿐. 사람들을 갈라놓은 장벽이,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얽어매듯 한데 모아, 경멸과 질투와 시기와 미움으로밖엔, 서로 대할 수 없게 만든 하늘 아래, 그들은 밤바람에 항거하는 작고 큰 파도들이 한 대양에 어울리듯, 그것과 맞서는 정열을 가지고, 한 머리 아래 손발처럼 화목하였다. 일찍이 어떤 피일지라도 그들과 같은 우정을 낳지는 못했으리라. 높은 예지, 새 시대의 총명만이, 비로소 낡은 피로 흐릴 정열을 씻은 것이다. 오로지 수정 모양으로 맑은 태양이, 환하니 밝은 들판 위를 경주하는 아이들처럼, 그들은 곧장 앞을 향하여 뛰어가면 그만이다. .. 2022. 11. 1.
류시화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을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으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 2022. 9. 27.
박경리 . 가을 박경리 . 가을 방이 아무도 없는 사거리 같다 뭣이 이렇게 빠져나간 걸까 솜털같이 노니는 문살의 햇빛 조약돌 타고 흐르는 물소리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고 있다 세월 밖으로 내가 쫓겨난 걸까 창밖의 저만큼 보인다 칡넝쿨이 붕대같이 감아 올라간 나무 한 그루 같이 살자는 건지 숨통을 막자는 건지 사방에서 숭숭 바람이 스며든다 낙엽을 말아 올리는 스산한 거리 담뱃불 끄고 일어선 사내가 떠나간다 막바지의 몸부림인가 이별의 포한인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하는 원죄로 인한 결실이여 아아 가을은 풍요로우면서도 참혹한 계절이다 이별의 계절이다 편집등록 신유라 2022. 9. 25.
임화 . 자고 새면 임화 . 자고 새면 자고 새면 이변((異變)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 행복되려는 마음이 나를 여러 차례 주검에서 구해준 은혜를 잊지 않지만 행복도 즐거움도 무사한 그날그날 가운데 찾아지지 아니할 때 나의 생활은 꽃 진 장미 넝쿨이었다. 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 마른 가지를 사랑 키엔 더구나 마음이 애 띄어 그만 인젠 살려고 무사하려던 생각이 믿기 어려워 한이 되어 몸과 마음이 상할 자리를 비워주는 운명이 애인처럼 그립다. 편집등록 성우혁 2022. 9. 18.
김수영 . 푸른 하늘을 김수영 . 푸른 하늘을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2022. 9. 16.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by 황정순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랫동안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식사를 준비할거야 이를테면 쇠고기를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해야지 아마 당신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거야 이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올려 놓아야지 아.. 2022.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