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근 . 저 모성(母性)
눈 내리는 성탄(聖誕) 아침
우리 집 개가 혼자서 제 새끼들을 낳고 있다
어미가 있어 가르친 것도 아니고
사람의 손이 돕지도 않는데
새끼를 낳고 태를 끊고 젖을 물린다
찬 바람 드는 곳을 제 몸으로 막고
오직 몸의 온기로 만드는 따뜻한 요람에서
제 피를 녹여 새끼를 만들고
제 살을 녹여 젖을 물리는 모성 앞에
나는 한참이나 눈물겨워진다
모성은 신성(神性) 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니
하찮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저 모성 앞에
오늘은 성탄절, 동방박사가 찾아와 축복해 주실 것이다
몸 구석구석 핥아주고
배내똥도 핥아주고
핥고 핥아서 제 생명의 등불 밝히는
저 모성 앞에서
정일근 시인
출생 : 1958년 7월 28일
출생지 : 경남 양산
데뷔 : 1984년 실천문학에 시 '야학일기'
학력 : 경남대학교 국어교육학
경력 : 2004 ~ 시힘 동인, 문화공간 다운재 운영
2001 ~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시 '바다가 보이는 교실' 수록
수상 : 2003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2001 시와 시학상 젊은 시인상
2000 한국시조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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