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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 등산

뱀사골 옥단 할매

by 조사익시문학(運營者) 2022. 9. 25.

 

뱀사골 옥단 할매


질풍노도로 익어가는 지리산 가을 놓칠세라
오스트리아에서 온 친구 둘과 함께 찾은 뱀사골
만만치 않은 오스트리아 가을인데,
뱀사골 계곡의 가을 풍경에 놀란 친구들 모습에서
덩달아 놀란 가슴 진정할 틈도 없이 민박집에 도착하였다

 

단풍 물결처럼 일렁이던 60년 전 어느 날
산꾼으로 살아온 박씨네 둘째 아들 34살 '성수' 총각한테
이거다 저거다 형편 챙기지 않고
김가네 넷째 딸 23살 '옥단' 처녀가 시집을 왔단다

 

산세 험악한 지리산 뱀사골에서
바위 벽처럼 고단함을 일터로 살아온 총각과
옥빛 고운 파도가 일렁이는 그 바닷가
삼천포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가
얼레리 꼴레리, 뱀사골에서
네 자녀 낳으며 함께한 지 60년 세월이 흘렀단다

 

성수 할아범과 옥단 할매네 앞마당에는
사루비아, 금잔화, 맨드라미가
터질것 같은 붉은 핏발 흥건히 하고
풀향 가득한 들판에서
이별 길을 재촉하는 곤충들의 걸음 길이 부산하다

 

가을은 그렇다. 이별이 잦은 철이다
까치집 위태로운 상수리나무 가지에서
후줄근한 바람에 후드득 도토리가 떨어지는 낮을 지나
달빛 내린 산뜰에서
이별하는 사람들이 어깨 흐느끼는 듯한 밤
참나무와 떡갈나무 가지 잎사귀들도
눈 내린 겨울이 오면 대지를 꼭 껴 앉고 죽음으로 간다

 

앞마당 스물대여섯 평 남짓
밭고랑을 뒤집어 고구마 줍던 할아버지
" 옥다이! 새참 챙겨 와야제"
" 째깨만 기다려! 더덕 굽고 있응께"

듬성듬성 붉게 녹슨 양철 대문 기둥에
'박성수' . '김옥단' 문패가 걸려 있다


이렇듯
육십 년 세월이 성수와 옥단이는 사랑의 세월이었다

- 지라산 뱀사골 민박집에서 -

 

 

   편집등록   신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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