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島에 내리는 비 (一)
열도에서 분주한 세상을 실어 나르는 철길 위에
남쪽 끝에서 밤 내내 눈 비비며
달려온 새벽안개가 또 어떤 창백한 얼굴을 동경에서 그릴 것인가
서울이나 동경이나 그 누가 우리 가슴에
송곳 날보다 살벌한 칼을 들이대고
두 얼굴에 흉터를 남기려 하는가
혼자일 때는 고이 시를 쓰다가도
둘일 땐 다시 뭉쳐서 서울에 대고 천 년 원수보다 혹독한
핏발 서린 앙갚음을 해대는 이들이여
동해를 넘나드는 바람 길 따라
하룻밤만 자고 나면 서울 거리는 열도를 닮았는데
동경도 서울처럼 거리인 채 모습대로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
명동이 시부야이고 부산이 나고야이듯
닮아버린 문화 행렬은 밤낮 모르고 넘나드는데
모퉁이 가게일지라도 진열대에 앉지도 못하고
거리로 내몰린 Made in Korea
나마저도 국제도시라고 불렀던 동경,
국제인 같은 의식은 본 적이 없고
생의 마지막 같은 가련함을 보다가도
아픔보다 여유로운 것은 내 조국 서울을 경배하기 때문이리라
사흘 내내 비에 젖은 열도의 복판에서
눈 부릅뜨고 골목까지 들여다봐도
열도에 내리는 빗물 검은
그 위를 걷는 고단한 얼굴들이 슬프다.
赤蜀黍畑 . 붉은 수수밭
여물지 못한 미답(未踏)의 땅,
열기가 들끓고 화산이 폭발하는
후지산 계곡을 용암이 흐르게 될 어느 날
종말의 별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붉은 수수밭으로 열도가 뒤덮이는 날을
언젠가는 일본인 너희는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조선인을 격멸할 것인가!
열도의 지축이 흔들리는 날
용암 속으로 사라져 가는
생과 죽음의 틈바구니에서 사투의 몸짓으로
조선을 향한 울부짖음은!
메아리조차 불타버릴지도 모를
생명체가 발 붙일 수 없는
현무암 속으로 한 줌의 재가 되리니
이제라도 소중히 여기거라
이 광대한 우주의 인연을
너나 나나, 그 어떤 세상을 맞게 될지
우리가 모르는 미래는 영원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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