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판타지아
趙司翼
자정이 넘도록 문간방 덧문 밖을 휘몰아치더니
어머니 손길 끊일 날 없던 장독대를 감싸 안고 눈이 내렸다
뒷 뜰 가득 녹색 지대 대나무 울타리가
장막 속에 유령처럼 고개를 숙이고
또 다른 나무들이 하얀 등대처럼 우뚝 솟은 모습을 보면서
불과 몇 살로 기억되는 어릴 때가
지금은 가고 없는 누이와 화롯가에서
세상 유일한 할머니 옛이야기를 먹고 자란
그 시절이 눈 내리는 강둑에서 헤엄치듯 불쑥 불쑥 오른다
마치 오래된 겨울이 다시 온 것일까
흐릿하게 미소 띤 할머니가 상상 속에 고요한데
환희의 눈부신 외침 한번 없이
구름 속을 번개처럼 날아다니며 살아 온 세월
인간 본성이 느끼는 고독 우울하게
추억이 소멸되면 그때는 탓할 운명도 없겠지
요람에서 무덤으로 함박눈이 쏟아진다
2001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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