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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시절 (겨울 초대장) 신달자 . 겨울 초대장 당신을 초대한다 오늘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겨울 아침에 나는 물을 끓인다 당신을 위해서 어둠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내 힘이 비록 약하여 거듭 절망했지만 언젠가 어둠은 거두어지게 된다 밝고 빛나는 음악이 있는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가장 안락한 의자와 따뜻한 차와 그리고 음악과 내가 있다 바로 당신은 다시 나아기를 바라며 어둠을 이기고 나온 나를 맨살로 품으리라 지금은 아침 눈이 내릴 것 같은 이 겨울 아침에 나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눈이 내린다 눈송이는 큰 벚꽃 잎처럼 춤추며 내린다 내 뜰 안에 가득히, 당신과 나 사이에 가득히 온 누리에 가득히 나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리고 새롭게 창을 연다 함박눈이 내리는 식탁 위에 2022. 12. 9.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유안진 .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내 고향 섶 다리로 냇물을 건너야 했던 마을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가야 했던 동네 까닭없이 눈시울 먼저 붉어지게 하는 아잇적 큰 세상이 고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의 희망도 익고 익어 가느라고 감 따는 아이들 목소리도 옥타브가 높아가고 장마 끝 무너지다 남은 토담 위에 걸터앉은 몸 무거운 호박덩이 보름달보다 밝은 박덩이가 뒹구는 방앗간 지붕에는 빨간 고추밭 어느 것 하나라도 피붙이가 아닐 수 없는 것들 열린 채 닫힌 적 없는 사립을 들어서면 처마 밑에 헛기침 사이사이 놋쇠 재터리가 울고 안마당 가득히 말라 가는 곶감 내음새 달디 단 어머니의 내음새에 고향은 비로소 콧잔등 매워오는 아리고 쓰린 이름 사라져가는 것은 모두가 추억이 되고 허물어져 가는 것은 모두가 눈물겨울 것 .. 2022. 12. 9.
알렉산드르 푸쉬킨 . 나이팅게일과 장미 알렉산드르 푸쉬킨 . 나이팅게일과 장미 봄날 안개 낀 밤, 정원은 쥐 죽은 듯 고요합니다 장미 한 송이가 동양의 나이팅게일을 노래합니다. 불쌍히 도 이 매력적인 장미는 아무것도 못 느끼고 듣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찬송가는 흐르는데 그저 조용하게 꾸벅꾸벅 졸기만 합니다 이렇듯 아름다운데, 추워서 노래를 못 듣는 건 아닌지? 정신 차리세요, 음유시인, 당신의 심장은 어디로 흐르는 건가요? 그녀는 시인의 영혼을 듣지도 느끼지도 못합니다 당신은 그녀에게 꽃이 피는 중이라고, 전화를 합니다 하지만 대답이 없습니다 A Nightingale And A Rose . Alexander Pushkin In gardens’ muteness, in spring, in the nights’ mist, Over a rose.. 2022. 12. 8.
老年 人生! 먼저, 오늘 이 자리에서는 학술적인, 이론적인 언급은 생략합시다 우리 대화 속에 오고 가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합시다 (Massachusetts State 은퇴자 클럽 강연에서) 우리 인생은 되돌릴 수 없는 단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단 1초도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며 우리 노년에 있어서 가장 자주 겪고 슬픈 일이 이별이며 만나고 헤어지는 것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만남이란 행복하고, 기쁘고, 삶의 원동력이 되고, 웃고 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을 거치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이별로 가슴 아프고, 슬프고, 눈물 흘리고 그 어떤 관계이건 간에 만남 뒤에는 이별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젊음과의 이별, 조직과의 이별, 직위와의 이별, 급여와의 이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2022. 12. 8.
남편의 이혼 선물 남편의 이혼 선물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늘 행복했지만 결혼 한지 십 년이 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집안에서 대를 이을 아이가 필요하다며 이혼을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부는 이혼하고 싶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지혜로운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노인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가족들의 이혼 요구가 더욱 극심하여지자 남편은 가족들의 의견을 따를 것이라고 말하며 이혼 잔치를 부탁했습니다. 가족들은 서둘러 이혼 잔치를 계획하고 친지들 에게 알렸습니다. 마침내 잔치 날. 잔치 중에 남편이 친지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서 이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가진 것 중에서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이혼 선물.. 2022. 12. 7.
기형도 . 봄날은 간다 기형도 . 봄날은 간다 햇빛은 분가루처럼 흩날리고 쉽사리 키가 변하는 그림자들은 한 장 열풍에 말려 둥글게 휘어지는구나 아무 때나 손을 흔드는 미루나무 얕은 그늘 속을 첨벙이며 2시 반 시외버스도 떠난 지 오래인데 아까부터 서울 집 툇마루에 앉은 여자 외상값처럼 밀려드는 대낮 신작로 위에는 흙먼지, 더러운 비닐들 빈 들판에 꽂혀 있는 저 희미한 연기들은 어느 쓸쓸한 풀잎의 자손들일까 밤마다 숱한 나무젓가락들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사내들은 화투 패 마냥 모여들어 또 그렇게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간다 여자가 속옷을 헹구는 시냇가엔 하룻밤 새 없어져버린 풀꽃들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의 인사人事 흐린 알전구 아래 엉망으로 취한 군인은 몇 해 전 누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여자는 자신의 생을 계산하지 못한다 .. 2022. 12. 7.
오늘도 가면의 무대는 오늘도 가면의 무대는趙司翼꽃 같은 세월 향기로운 봄인데도너희 포악한 앓음이 병인 줄 모르고 적시된 진실을 혀 끗 만큼도 말하는 것이 없구나기억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무라이 유산뿐일 것이니어느 천년부터 처박힌 잔해로 욱일기, 피의 물결을 한 발버둥을 보면서어쩜 이리 그 긴 세월에도 변한 게 없다겉보기엔 인간이라 인간 된 마음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병실을 눈물짓는 촛불 하나처럼그릇된 영혼 애처로워 손 모으겠다만설마 아니 핏줄 속까지 그래서야 되겠느냐 어둔 밤을 별빛 찬란한데 눈곱만큼도 타협할 마음이 없어서나의 침묵하는 시간만 길어지고그 까닭으로 한마디 표현조차 잃어버리고자정을 태동하는 고요한 시간에열도의 처마 끝에 검은 리본을 내 건다   편집등록.성우혁      제목 2022. 12. 7.
그 밤, 다뉴브 강은 우울했다 나는 오늘 다뉴브 널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는 필연코 복종하고 따르며 굴복을 비열로 먹고사는 폭풍우 난폭히 흐르는 강물이어야 행복했고, 잔잔히 소리 죽여 흐르는 강물결은 사상을 난도질당해야 행복했고, 민주 물결이 짓밟히고 걷어차이는 몇몇 거리의 행태는 정상이 비정상이며 분방한 진리를 틀어막는 무엇이든, 아무것도 정상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 찬비 내리는 밤 마가렛서 세는 별을 누군가도 슬픔 눌러 참으며 나처럼 세었을 것이고 마르크스 사상에 물든 자들도 안개 자욱한 하늘서 별을 세며 낭만으로 사는 동안이 있었는지! 친구 기다리며, 이 또한 혼란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지! 바에서 남겨 온 술을 마시고서야 70년대, 핏빛 흥건했던 다뉴브 강은 아무런 말 없이 흐른다 친구와 둘이서 베오그라드에.. 2022. 12. 7.
앤 플라톤 . 물망초 앤 플라톤 . 물망초 아침 안개 자욱한 시간이 오면 모든 꽃에 부드러운 태양이 빛날 테고 당신이 인자한 미소를 짓지 않을 때 모든 마음이 당신께 응답한다고 생각하세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순간에도 날 잊지 말아요 황혼 녘 마지막 석양이 질 때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안개가 언덕으로 흐를 것이고 산을 오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노래부를 때에도 날 잊지 말아요 첫 번째 별이 찬란하게 빛날 때 둥근 밤을 외롭게 비출 것이고 밝은 달빛이 어둠을 밝힐 때 다양한 별빛도 빛나게 될 것이고 한낮 태양처럼 세상은 밝아지게 될 때에도 날 잊지 말아요 허공의 바람이 엄숙하게 일렁이면 생각도 깊어지고 마음도 깊어집니다 당신이 슬퍼하고 외로워하면 혼자라는 느낌 때문에 한숨을 쉬게 되고 우울함을.. 2022. 12. 6.
겨울 南大川 겨울 南大川 趙司翼 온갖 것들로 하여 눈처럼 쌓인 잔인한 물길 지어미가 그래 왔듯 영혼의 고향에서 상처 입은 가슴조차 살을 뜯어 피의 물결을 하고 대를 잇는 몸부림이 있고서야 연어들은 지천 상류 자갈 밭서 한 생을 죽어갔다 줄무늬처럼 굴곡진 모랫길 오래된 시간은 찬물 결로 흐르는데 옛일이 되어가는 처절했던 세월도 빛바랜 참빚처럼 뼈의 모습을 하고 희끗희끗 영혼이 되어 남대천을 떠다닌다 이 어둠 속을 겨울 깊어 가는 밤 혹한의 물소리에 내 가슴도 울컥한데 밤하늘로 달이 휘영청 밝아오는 것은 나의 애끓는 마음을 진정하고부터이다 가슴이 시리도록 찬 밤을 눈은 날리는데 남대천은 물결만 소리 없이 오고 가고 편집등록 . 성우혁 BGM-남택상(Orphelin) 제목 2022. 12. 5.
이해인 . 12월의 엽서 이해인 . 12월의 엽서 또 한해가 가 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해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뛰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요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흘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 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어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 2022. 12. 5.
日記 (조선인 윤씨와 和田貞夫씨) 궁핍하기 이를 데 없는 초라한 방파제를 지나가다 어부의 물질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스치듯, 찰나에서 노인을 보며 '인간이 저토록 고단하게 늙을 수도 있구나' 방해가 될까 싶어 망설이다가 열서너 걸음 하면서 다가갔다 ' 안녕하세요' 한마디에 귀찮아하는 내색은커녕 눈물 글썽이며 내 손을 꼭 잡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데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윤 씨였다 1942년, 징용당한 지, 반년이 지날 즈음부터 탄광 화약 열기에 눈물은 말라버리고 부모 형제 그리운 밤이면 목 놓아 울고 싶어도 울음마저 잊어버렸단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 누구와 병이 된 마음 털어내셨을지! 내가 끼어들 틈도 없이....... " 지난달엔 상주가 고향인 정 씨가 향수병에 시름 거리다 하늘로 떠났고 엊그저께 목포가 고향.. 2022. 12. 4.